역시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한 유쾌함과 가벼움. 금방 읽고, 금방 잊고. 분명 읽은 기억도 있고, 책꽂이에 당당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고, 심지어 제목도 마음에 드는데, 전혀 읽은 기억이 없는 책이었다. 다시 읽다보니 기억이 조금 돌아오긴 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환상적인, 기묘한’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교토의 밤거리나 헌책방 시장에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형형색색의 그림이 그려지고, 조금은 과장된 인물의 표정과 연기가 보이는 듯했다. 이런 느낌이 극대화된 부분은 역시 이백씨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3층 집과 같은 움직이는 전차에 산다든가, 미로같은 헌책방이라든가, 기침으로 회오리를 일으킨다든가 정말 환상 속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인물을 책 속 모든 등장인물이 알고 얽힌다는 점이 책의 핵심으로 보인다. 1편의 술대결, 2편의 헌책시장, 3편의 대학축제, 4편의 감기 모두 인물이 연결되어 있어 소소한 일상의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1편에서 인물이 소개되는 부분은 하나의 단편이려니 하고 읽었는데 4장까지 연결되어서 뒤로 갈수록 읽기 편했다. 1편에 너무 많은 인물이 나오고 모두 관련이 있어서 관계를 정리하며 읽어야 했다. 물론 한번 정리하고 나니 뒤에가 훨씬 편하게 읽힌 것이겠다.)

전체 내용 면에서 주인공 남자가 주인공 여자를 따라다니며 드디어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찌질하다고 웃으며 볼 수 있었다. 독특한 4차원의 신입생 아가씨와 약간 소심해보이고 존재감없어 보이는 선배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 풋풋하기도 하고, 남학생의 고군분투가 기특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존재했던 나의 대학생활에 환상이라는 요소를 잘 덧붙여 놓은 것 같다. 그 덕분에 공감도 느끼고, 낭만도 느끼고, 허구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할일이 없어 남아도는 시간과 무익한 정열, 봐봤자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즉 혐오해 마땅한 ’청춘’뿐이었다. ‘대학 축제는 좌판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청춘을 강매하는 청춘 암시장이다!’ - 청춘 예찬론자인 나로서는 정말 웃음만 나오는 구절이었다. 게다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짝사랑하는 후배를 보러 축제에 오다니 남학생의 성격과 모습이 그려졌다. 약간 답답한 점이 어리석으면서, 사람들과 잘 안어울리는, 안경쓴 패션감각없는 공대생의 느낌. 혹은 고시생의 느낌.

‘우리도 말이지 그저 맹목적으로 이건 안돼, 그건 안돼 하는게 아니란 말이야. ... 무사히 축제의 대단원을 내리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그런데 뭐야! 이 얼마나 손해 막심한 역할이냐! 이놈 저놈 다 저하고 싶은 대로야!’ ‘아아, 제기랄! 부럽다! 나도 그들 편에 서고 싶다!’ - 축제에서 무허가 공연을 막으러 다니는 축제사무국장의 말. 공감 100%!

 

하지만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 이야기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사건들도, 그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도 아닌! 이백씨가 만들어 제공하는 ‘가짜 전기부랑’이라는 술의 맛을 보고 싶다!! 꽃핀 느낌의 향기로운 술, 배 안쪽에서부터 따뜻해져오는 술이라니. 도대체 어떤 느낌의 술일지 궁금해져 버렸다.

지금 나의 나이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통할까 싶다. 청춘의 나에게는 확실히 해줄 수 있는 말이었을텐데 과연 지금의 나에게는? 그러고보니 왜 밤이지? 낮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