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수상작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고, 수상 작가들의 이름이 꽤나 익숙했기에 엄청난 문인일 것이므로 그의 작품이 꽤 기대가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이상과 비슷한 입지의 작가라는 말을 들으니 대충 어느 위상인지 짐작도 되어 궁금함은 더 커졌다.

단편들을 읽은 전체적인 느낌이라면: 어른을 위한 사색동화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지만 읽으면서 그렇게 크게 사색하게 되진 않았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무엇인가, 혹은 왜 이 작품이 훌륭한 것인가를 생각하며 읽으려 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단편들이 많았다. 내가 일본 문화와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인가, 혹은 일본어 특유의 멋을 이해하지 못해서인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맨 처음에 실린 ‘아버지’란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명확하게 작가가 말하려 한 바는 모르겠지만 친구들 사이에 있는 아들이 몰래 배웅나온,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의 아버지를 희화화하는 내용이 오늘날의 사이가 별로인 아버지와 아들을 둔 가족과 비슷한 면도 있고, 오히려 그 정도의 유대도 없이 단절된 오늘날의 가족과는 상반된 면으로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렇게 아버지를 놀리고 얼마 후 죽은 아들이라니. 서술자는 효도에 대해 말하며 마무리하지만 단순히 효도의 문제가 아니라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죽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버지의 슬픔은 왜 작품에 없을까? 흐릿하게나마 많은 생각이 들어서 역시 처음 작품으로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인 개구리는 자기 중심의 사고를 보이는 개구리에 대한 우화였는데 역시 거의 백년 전에 이런 통찰을 소설로 써내다니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동시에 읽고 있던 ‘꾸뻬씨의 행복 여행’에서 인간은 행복을 위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을 읽고 이에 매우 동의하고 있던 터라 딱 정확한 우화라고 생각했다.

‘원숭이’도 날카로웠다. 애완동물은 쉽게 인정되는 실수가 사람에겐 인정되지 않아 죄인이 되고 처벌받는 경우를 보여주었다. 내가 때로 하는 생각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왜 사람에게 더 엄격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기 때문에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일까? 애완견이 지폐를 물어가서 버렸다면 한 두 대 맞고 말겠지만, 사람이라면 도둑이라는 틀에 갇혀버린다. 사람의 가치와 동물의 가치는 어디까지 동등하고, 다른가?

‘지옥변’은 읽으며 김동인의 ‘광염소나타’가 떠올랐다. 예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 혼이라도 내다 팔듯한 내용이 그러했다. 또한 최근에 읽은 만화책인 ‘우라메시야’가 생생하게 떠올랐고 이 만화를 통해 내가 일본에 대해 가지게 된 이미지와 매우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지옥과 소통하고 있는 듯 한 그 느낌과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 때문에. ‘지옥변’을 읽으면서 책 제목이 “묘한 이야기”인 이유가 이 작품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름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길이가 길었는데, 매우 흥미진진해서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었다.

‘귤’이라는 작품은 읽으면서 묘사와 내용 면에서 백석의 ‘팔원’과 이상의 ‘권태’가 떠올랐다. ‘팔원’에서 화자가 보여주는 소녀의 모습과 동일하게 터진 손등, 식모살이 등이 겹쳤다. 그리고 서술자는 ‘권태’에서와 동일하게 일상의 권태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라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인지, 혹은 그 시대의 작가나 지식인이라면 비슷한 감성을 지니게 된 것인지 살짝 궁금해졌다. 그리고 1900년대 초 일본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우리 나라 시에서 보여주던 모습과 동일한 모습이 나온다니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이란 비슷한 부분들이 있고, 그러므로 문학이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는 것인가?

‘묘한 이야기’는 일종의 환상소설로 가벼이 읽었고, 다른 작품에도 살짝씩 느낄 수 있는 이 환상성 때문에 책 제목으로 결정되었나 보다 싶었다. 전쟁 중 바람피울 뻔한 아내가 정조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환상성으로 풀어낸 내용은 그냥 유쾌하기만 했다. 하지만 내용 중에 서술자가 조선으로 간다는 구절이 계속 나오는데 1900년대 초를 생각하니 그 구절의 뒤가 계속 생각이 났다. 왜 조선으로 갔을까? 조선으로 가서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 그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을까? 그냥 단순히 삶의 공간을 옮긴 것 뿐이고 그냥 똑같은 삶을 살았을까? 아무래도 일본 소설이고 창작 시기가 그렇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읽을 수는 없었다.

‘흰둥이’도 재미있었고, 매우 교훈적이었다. 주인공 흰둥이이자 검둥이가 정의를 실천한 이유가 검둥이의 죽음을 못본척 하고 도망가 혼자만 살아남은 부끄러움 때문에 ‘검게 변한 내가 싫어서, 그 모습의 나를 죽여 없애고 싶은 마음에’라고 말하는 점이 멋있게 보였다. 자신이 한 일은 정말 위대하고 힘든 일이었고, 이를 생색내지 않고, 계속 스스로를 반성하는 삶이라니!!

마지막으로 ‘모모타로’는 전쟁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 것이라 이해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도깨비를 그냥 침공하고 자신의 나라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모모타로를 통해 전쟁의 잘못된 의도와 과정, 결과를 비판하는 것으로 읽었다. 도깨비가 왜 자신들을 정벌하느냐고 물었을 때 부하가 생겼으니 정벌하는 것이고, 부하는 왜 생겼냐는 질문에 정벌을 위해 맞아들인 것이라는 답. 정말 궤변이다. 모모타로의 대답은 순환되는 오류일 뿐이었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은 이유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정리하며 읽으며 나름 생각하며 읽은 단편들도 있었지만, 이 정도가 진짜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해서 기념할 만큼 이 작가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작품들로 충분한지는 계속 의심이 든다. 적지 않은 단편들은 정말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무슨 가치인지 모르겠다. 더 탐구해본다면 알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