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도서관에 갔다가 남편이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라는 책은 나를 새로운 관심사인 ‘번역’의 세계로 이끌었다. 번역입문서 격인 이 책에는 번역가이자 번역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저자의 경험담과 번역 초보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다양한 번역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제통역사인 최정화 교수가 쓴 『외국어와 통역·번역』에서는 통역과 번역의 차이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내 적성에는 번역이 훨씬 더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번역의 탄생』은 빠른 시간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화려한 색감으로 눈을 끌진 않지만, 읽을수록 그 깊은 맛에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 고아 만들었기 때문에 책 속에 정성과 시간이 녹아있는 게 느껴졌다. 번역에 관한 책이긴 했지만, 우리말을 바르게 쓰려는 이들도 참고하면 도움될 내용이 참 많았다.

 ‘들이밀기’와 ‘길들이기’라는 개념으로 간단명료하게 직역과 의역의 차이를 나눈 점부터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동사와 부사가 상대적으로 발달했으며, 주어가 자주 생략된다. 대명사·수동태·사동형은 우리 문장에는 낯선 형태들이다. 억지로 일대일대응을 통해 번역하기보다는 다양한 어미와 접두사·접미사 등 덧말을 활용해 문장에서 살을 빼고 뜻을 좁혀야 매끄럽게 잘 읽히는 표현을 낳는다. 때로는 덧붙이기와 뒤집기도 필요하며, ‘사이비친구’와 짝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입말’인 토박이말을 잘 살리면 우리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번역에서 사전은 필수다. 좋은 사전은 현재 사용하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반영하며, 다양한 표현법도 실려 있다. 우리말은 맞춤법이 적용된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고, 영일사전의 영향을 받아 일본어투 단어해석이 많다. 간혹 엉성한 번역책을 읽으면 우리말로 써있지만 내용을 종잡을 수 없던 이유가 이 때문인 모양이었다. 물론 짧은 지식도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나 같은 ‘독자’의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번역이나 창작이나 결국 모국어를 다룬다. 중간에 비는 기간이 있긴 했지만, A4 1매 남짓한 글 여러 편을 3년 넘게 주1회 작성했었다. 단어나 어미 표현에서 겹치지 않게 표현하는 것, 짧게 쓰는 것,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언제나 쓰다보면 할 말이 많았다. 쓰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초벌작성은 금방 이뤄졌지만, 가지를 쳐내고 다듬는 것에 많은 품이 들었다.

 때론 우리말이 더 어렵다. 영어공부를 할 때처럼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지 않아서였을까? 국어나 영어나 ‘공부’라는 형태로 만나지 않은지 10년도 넘게 지났다. 몇 개월 전 TOEIC을 치렀다. 만족할만한 점수는 아니지만 형편없는 점수 또한 아니었다. 국어시험을 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앞으로도 오랜 기간 번역과 창작의 언저리에서 떠돌 것이다. 나이와 환경과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언젠가 나도 번역가 대열에 한 발 내딛게 된다면, 사전 두 권을 꼭 장만하고 싶다. 『Brewer’s Dictionary of Phrase and Fable』과 『Thesaurus』. 영문화권의 고사성어와 유의어를 다룬 사전이다. 외국어의 형태 속에서 의미를 찾아 독특한 문화와 느낌을 전하는 일은 분명 유혹적인 도전이다.  

 

번역, 길들이기, 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