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크 슈타이너와 요르크 뮐러의 그림 책이다. '두 섬 이야기'가 워낙 인상 깊어서 이 책 역시 기대가 가득했다. 게다가 패러디 동화라니 더 흥미로웠다.
부엉이는 선글라스 회사의 광고 모델이다.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에서 동물들은 이제 늙었다고 주인한테 괄시받아 뛰쳐나오지만, 현대의 이야기에선 주인이 광고 모델을 다른 돈벌이에 더 써먹으려고 해서 뛰쳐나가려고 한다. 부엉이는 '뮐러와 슈타이너 광고 회사(ㅋㅋㅋ)'에서 일하는 걸 그만두고 달아나기로 결심했다. 실수하지 않도록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를 꼼꼼히 읽어보는 부엉이. 넓은 창 뒤로 코카콜라 전광판이 보이고 그 옆에는 어디더라? 벤츠 표시던가? 뭐 암튼...

이런 모험에는 친구가 필요하기 마련.
룁제 씨의 운동복 상표 노릇을 하는 악어나, 쉬키 회사의 냉장고를 광고하는 펭귄, 그리고 아름다운 큐추 부인의 환경 보호 의식을 널리 알리는 늙은 판다도 동참시킨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들이 찾아가려고 하는 곳은 브레멘이 아니라 디즈니랜드.
뭐시라? 디즈니랜드에서 비자본주의적 꿈을 이루려는 것일까?
이 친구들,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동물들은 각자 꿈꾸는 삶을 소개한다.
부엉이는 디즈니랜드에 가서 우아한 클래식 음악회에서 피아노 치는 자기 모습을 상상했고,
악어는 록 밴드의 보컬이 되길 원했다.

포크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판다와 아코디언으로 탱고 음악을 연주하길 원하는 펭귄까지.
저마다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 다르다.
당연히 상대에게서 기대하는 바도 다르다.
그들의 꿈이 정말 디즈니랜드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해도, 그 꿈을 함께 이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닐 듯 싶다.

유난히 밝은 건물에 쳐들어간 동물 친구들. 과거 브레멘 음악대로 가려던 동물들처럼 도둑과 맞닥뜨린 건 아니지만, 어찌 보면 더 큰 도둑을 만난 걸지도.
이들이 찾아간 곳은 바로 방송국이었다.
방송국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잽싸게 머리를 돌린 방송국 국장에게 포섭되어 이전보다 더 큰 광고수익의 대상이 되어버린 동물 친구들.
아이러니하게도 녹화장의 세트는 이 친구들이 원했던 음악 연주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것!

브레멘 음악대를 따라하려던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는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진다.
어처구니 없게도 가장 먼저 떠나오려고 했던 부엉이 친구는 너무 적응을 잘했고, 방송국 국장의 제안을 거절한 판다는 원했던 것처럼 소박한 포크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
다른 친구들의 광고와 달리 환경 보호 의식을 알리는 일을 해왔던 판다는 역시 남달랐다.
부엉이와 악어와 펭귄은 자신들을 둘러싼 매트릭스를 나중에라도 알아차릴까? 어쩌면 또 다른 매트릭스 디즈니랜드를 꿈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