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신연의(封神演義)≫ 전 100회는 중국 고전소설의 신마소설(神魔小說) 중 하나의 대표작으로서, ≪봉신전(封神傳)≫, ≪상주열국전전(商周列國全傳)≫, ≪비평전상무왕벌주외사봉신연의(批評全像武王伐紂外史封神演義)≫, ≪봉신방(封神榜)≫, ≪서주연의(西周演義)≫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책의 작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는 허중림(許仲琳)이라는 설로, 이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 여겨지는 명(明)나라 만력(萬曆) 연간(1573∼1620) 각본[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 소장]의 ‘종산일수허중림편집(鍾山逸叟許仲琳編輯)’이라는 서명(署名)에 근거하고 있다. 이 설은 근거가 확실하여 루쉰(魯迅)의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을 비롯한 거의 모든 소설사와 문학사에서 따르고 있으며 현재 학계의 통설로 여겨지고 있다.

둘째는 육서성(陸西星)이라는 설로, 이것은 ≪곡해총목제요(曲海總目提要)≫ 권39의 ‘원시도사육장경소작(元時道士陸長庚所作)’이라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에서 장경은 육서성의 자(字)로, 원나라 때 사람이 아니라 명나라 때 사람이다. 이 설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별다른 증거가 없어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 책은 주무왕(周武王)이 은주왕(殷紂王)을 정벌하는 ‘무왕벌주(武王伐紂)’의 역사적 사실에 작자의 상상과 환상을 마음껏 발휘하여 장편의 장회소설로 창작해 낸 것으로, 그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회는 서막으로 맨 첫머리에 옛 시 한 수로 전체의 내용을 개괄하고 있다. 이어서 은주왕이 여와궁(女媧宮)에 헌향하면서 시를 지어 신을 모독하자 신이 세 요괴에게 은주왕을 미혹시켜 주나라를 도우라고 명한다.

제2회부터 제30회까지는 은주왕의 잔인무도한 폭정, 강자아[姜子牙, 강태공(姜太公)]의 등장, 서백(西伯) 문왕(文王)이 화를 피하는 것, 황비호(黃飛虎)가 은나라를 배반하는 것, 그리고 은나라와 주나라가 교전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제31회부터 제66회에서는 은나라가 36로(路)의 제후들을 불러 모아 서주 토벌에 나서자, 서주를 돕는 강자아가 이들과 맞서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36로의 대군을 격퇴시킨다.
제67회부터 제97회에서는 주무왕이 군사를 일으키고 8백 제후들과 연합하여 맹진(孟津)에서 회맹(會盟)한 뒤 은주왕을 토벌하는데, 그 가운데 주나라를 돕는 선불(仙佛)의 천교(闡敎)와 은나라를 돕는 신마의 절교(截敎)가 각각 도술을 사용하여 격렬한 전투를 벌이다가 결국에는 절교가 패하고 만다. 또한 은나라 군민(軍民)이 등을 돌려 도성을 주나라 군대에게 바침으로써 은주왕은 분신자살하고 주무왕이 입성하여 은나라는 멸망한다. 전체 내용 중에서 이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어 신마소설의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3회는 전체의 종결로서 강자아가 죽은 장수들을 봉신하고 주무왕이 공신에 대한 보답으로 열국을 분봉(分封)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이러한 내용은 작자 허중림의 개인적인 창작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무왕벌주’에 관한 전설이 당시 민간에 널리 퍼져 있긴 했지만 그 직접적인 연원은 송원대(宋元代)에 나온 ≪무왕벌주평화(武王伐紂平話)≫다.

≪무왕벌주평화≫는 당시 주로 역사적인 사실에 흥미로운 고사를 가미하여 청중들에게 들려주던 전문적인 이야기꾼[說話人]의 저본 가운데 하나로서 상중하 3권 42회로 되어 있는데, 분량은 ≪봉신연의≫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대조해 보면 ≪봉신연의≫ 내용의 기본 골격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 허중림은 바로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100회의 장편소설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천교의 무리로 천명에 따라 주무왕을 도와 주나라 건국에 공을 세운 자들이다. 여기에는 교주인 원시천존(元始天尊)과 그 사형인 노자(老子)를 비롯하여 나타(哪吒)ㆍ양전(楊戩)ㆍ토행손(土行孫) 등이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출가하여 득도한 신선의 무리다.

둘째는 절교의 무리로 천명을 거역하고 은주왕을 도와 천교와 대립하는 자들이다. 여기에는 교주인 통천교주(通天敎主)를 비롯하여 수많은 요마들이 속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동물이나 사물의 정령이 오랜 수련을 쌓아 인간으로 변신한 무리다.

셋째는 서방교(西方敎)의 무리로 이들은 근본적으로는 천교를 돕지만 서방과 인연이 있는 자라면 천교나 절교를 가리지 않고 구제하여 서방정토로 데려간다. 여기에는 교주인 접인도인(接引道人)ㆍ준제도인(準提道人) 등이 속한다.
넷째는 인간계의 인물로 대부분 역사상 실존했던 자들이다. 여기에는 이 책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강자아를 비롯하여 주문왕ㆍ주무왕ㆍ은주왕ㆍ달기 등이 속한다.

한편 천교ㆍ절교ㆍ서방교라는 명칭은 사실상 정식 종교 명칭은 아니다. 그중 천교와 절교는 모두 홍균도인(鴻鈞道人)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으므로 원래는 같은 교파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봉신연의≫가 나온 명나라 중엽은 도교와 불교가 흥성했던 시기이므로 작자가 의미하는 천교와 절교는 도교이고 서방교는 불교라고 여긴다. 그러나 최근에 일부 학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는 동한(東漢) 말년에 전래되었으므로 서방교를 불교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하면서, 이 세 교파는 모두 도교의 분파며 이들의 투쟁은 곧 도교 교파 내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책은 실로 중국 신마소설의 걸작이다. 책을 펼치면 우선 수백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이 출몰하면서 각자 색다른 무기를 휘두르며 하늘과 땅에서 기상천외한 전투를 벌이는 데 놀라게 된다. 그 신기한 상상의 날개가 광활한 하늘을 끝없이 비상하고 그 기괴한 환상의 수레가 드넓은 대지를 종횡으로 치달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무기의 명칭만 보더라도 건곤권(乾坤圈)ㆍ혼천릉(混天綾)ㆍ타신편(打神鞭)ㆍ정해주(定海珠)ㆍ개천주(開天珠)ㆍ음양경(陰陽鏡)ㆍ번천인(番天印)ㆍ풍화륜(風化輪)ㆍ초요기(招妖旗)ㆍ육혼기(戮魂旗)ㆍ칠보묘수(七寶妙樹)ㆍ구룡신화조(九龍神火罩)ㆍ곤선승(綑仙繩) 등등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무기들의 가공할 법력(法力)은 차치하더라도 그 조어 능력에서 작자의 상상력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요즈음의 무협소설에도 많은 무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나타의 연화화신술(蓮花化身術)과 토행손의 지행술(地行術), 양전의 변신술 등을 통해 문학적인 상상력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으며, 만선진(萬仙陣)ㆍ주선진(誅仙陣)ㆍ황하진(黃河陣) 등에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전투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영화화한다면 세계 최대의 공상 전쟁극이 될 것이다.

≪봉신연의≫는 문학성과 사상성에 있어서는 다소 손색이 있다 하더라도 환상적인 상상력과 오락성에 있어서는 중국의 어떤 소설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청(淸)나라 양장거(梁章鋸)의 ≪낭적속담(浪跡續談)≫에서는 “≪서유기(西遊記)≫ㆍ≪수호전(水滸傳)≫과 정립하여 셋이 되고자 했다(意欲與≪西遊記≫ㆍ≪水滸傳≫鼎立而三)”라고 했다.

≪봉신연의≫는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유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마소설 가운데 ≪서유기≫ 다음으로 많은 중국 판본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그 전래 시기는 약 17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겸재집(謙齋集)≫의 ＜언서서주연의발(諺書西周演義跋)＞에 의하면, 겸재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의 어머니(1647∼1698)가 소설을 좋아하여 일찍이 ≪서주연의≫ 10여 편을 얻어 베꼈는데, 그중 1책(冊)이 궐본(闕本)인 탓에 다 채워 베끼지 못했음을 애석해하다가 나중에 다행히 전본(全本)을 얻어 궐본을 채워서 기뻐했다는 것이다. 또 같은 발문(跋文)에 부녀자들이 서로 소설책을 빌려 보았다는 언급도 나온다. 이 같은 기록은 이 책이 조선 후기 사대부 가정에서 소설 독서의 한 풍속을 이루고 있었다는 값진 증거이기도 하다.

그 후 ≪봉신연의≫는 ≪셔쥬연의≫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는데, 현재 낙선재본(樂善齋本) 한글 번역 필사본 25책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셔쥬연의≫는 19세기 초에 전사(轉寫)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체적인 번역 양상으로 개장시(開場詩)ㆍ산장시(散場詩)가 빠져 있고 본문 중간에 삽입된 시들도 대부분 생략되어 있으며 의역과 축역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도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는 ≪봉신연의≫가 널리 읽히고 있으며, 만화나 게임으로 제작되어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주요 등장인물이 그려진 카드놀이도 성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