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있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야. 어쩌다 태어난 누구누구의 혼외자도 아니고, 불의 충동에 시달리는 미치광이도 아닌, 그냥 나.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 바로 나.”-286

수상작들은 늘 관심이 간다. 후회를 하더라도 수상작이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문학상은 아직 못 읽고 집에 둔 책도 몇 권 있지만 일단 [스타일]을 읽고 실망해서 큰 기대를 안 하고 읽기 시작했다. 일단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두려워 도망쳤다는 말에 무엇인가 자폐가 느껴지고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젊은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세상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을 밀어낸 것은 그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게 된다. 예전에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사는 것에 가끔 지칠 때면 일이 많이 꼬일 때면 나 역시도 무엇과 부딪히기를 거부하게 된다. 모든 게 무기력하고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받고 부터는 이런 소외된 캐릭터를 좀 더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고를 치게 되어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됐지만 다시 정신병원 행이 결정된 그는 말도 더듬고 밖에도 나가지 않는 자폐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목소리 환청 때문에 고생했던 그는 늘 나쁜 마음을 먹고 하는 행동이 아닌데 매번 결과가 안 좋아 인생 자체가 무엇인가 단단히 꼬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벅머리가 되어도 머리 깎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하는 그는 가위라는 물건을 무서워한다. 그것은 책을 읽다보면 엄마와 관련이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그와 반대인 동갑내기 캐릭터는 체격도 크고 남자답고 당당하고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먼저 행동하는 적극적인 스타일이다. 이런 행동파와 같은 배를 탄 주인공.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에 자신도 모르게 말려있다. 그러면서 승민이 정신병원에 온 이유를 알게 되고 그가 점점 눈이 안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마지막 탈출을 위한 도전은 눈물겹다. 쉽지 않았고 모든 것은 엉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자신이 마지막에 해보고 싶은 그것이었다.

 

승민 하고 같이 있으면 늘 일에 휘말려 피해야 된다. 모른 척 해야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의 사정을 알고 이해하면서 마치 대리만족을 하듯 수명은 승민을 돕는다.  뜻하지 않는 우정이 생기고 그들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는다. 재지도 않는다. 그냥 진심이다. 진심으로 서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순수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수명이 늘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조바심을 내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뭉클했다. 어릴 적 말을 더듬는 그는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누구에게 열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 최고라고 말해주고 인정해 준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떠나려하고 수명은 그가 자신을 다시 혼자 둘까 두려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한다.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연 가상의 인물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단 한명이라도 이 녀석을 위해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정신병원을 구경도 못해봤지만 이 책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그만큼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었고 귀엽고 웃기고 안쓰러운 캐릭터들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한껏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 그들을 단순하게 ‘미쳤다’라고 말하기에는 무엇인가 찜찜함이 남는다. 그들을 미치게 만든 것은 혹은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재는 기준을 마음대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으로 많은 것들을 단정 짓기만 한다. 조금 더 이해해주고 조금 더 감싸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웃음은 [공중그네]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책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을 때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딱 맞는 듯 느낌이었다. 그들을 이해하면서 뭉클해진 가슴을 중간 중간 유머로 풀어낸다.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 조연들의 캐릭터는 생각만으로도 큰 웃음을 자아낸다. 항상 등장하는 선과 악도 있었고 전혀 엉뚱한 캐릭터를 연출한 같은 방을 쓰는 사람 만식 씨와 김용 두 사람이 감초 역할을 단단히 해서 인상적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승민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진실에 얻어맞아 고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그림자에 놀라 끝없이 달아났던 것인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p325

 

2009.5.botongs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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