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열린 독서를 하려면 완전히 무장 해제된 채로 만신창이로 휘둘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열린 독자는 일종의 매저 키스트처럼 텍스트에 의해 마구 휘둘리며 상처 입고 충격 받는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아마 무슨 고강도의 극기 훈련을 받는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멍들고 몸살 난 것처럼 구석구석이 아리고 쑤실 것이다.-p899

책을 읽다보면 고전에 대한 욕심이 난다. 하지만 그 욕심만큼 다가가기 힘든 책이 고전인 것 같다. 나 역시 책을 한 권씩 살 때 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미국 대학에서 고전 읽기 강좌를 교양필수로 채택하고 있다는 문구를 읽었다. 저자는 영화평론가로 일하고 있고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미디어가 지겨워 지면서 그는 안절부절 했던 마음을 고전 읽기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새로운 것을 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나의 궁금증과 마찬가지로 고전을 남들은 어떻게 읽고 있고 또 읽지 않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조카들과 수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요즘 아이들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지금 우리의 현실도 다를 바가 없다. 고전에 대한 이야기 전에 책보다는 영화, 게임, TV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침착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의 수렁에 빠진 우리들은 책의 깊은 맛을 고전의 매력을 알지도 못한 채 한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가지고 나 역시도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한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좀 더 많은 공감을 얻어내고 또 내가 책을 다시 읽고 나서 이런저런 느낌을 비교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쭉 나열된 작가들의 이름을 살펴보며 평소에 관심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마르크스, 니체, 버지니아 울프 등 이었다. 그리고 반 정도는 낯선 작가들이었는데 아무래도 관심 있는 작가보다는 책을 읽어나가는데 조금 낯설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가가기 어려운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와 교수,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래도 조금 가까워지고 이해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역시나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깊었고 또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 이상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건 영화를 보건 그 이야기 뒤에 숨겨져 있는 내용을 많이 알게 되면 그 이야기가 더욱더 특별해 진다. 고전을 읽을 때도 시대적 배경이나 그 작가의 특징을 이해하고 책을 읽는다면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도 쉽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 그 작가의 팬이 될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처음부터 고전을 잘 읽었고 여기에 언급된 작가들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 속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고 한 편으로 단정 지어 오래전에 덮어버린 작가의 책도 있었다. 그 역시도 책을 읽을 때 잘 이해되지도 않고 진도도 나가지 않아 고생스러웠던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그것을 우연히 해결했던 방법도 들어있었다.

학생들 역시 모두가 완벽한 토론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배우고 있는 학생이었고 그들에게는 어찌 보면 굉장히 따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런 강좌가 있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이라는 것도 책이고 그것을 읽는데 어떠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읽고 싶은데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다면 다른 사람이 고전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책 읽기를 넘어서 깨달음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즐거움이고 그것을 계속 읽고 싶은 책 여행의 첫발걸음을 내 딛을 수 있을 것이다. 900페이지 가까이 읽으면서 지루하기도 하고 재밌어서 조금 더 내용을 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가도 있었다. 그리고 관심 가졌던 작가는 책을 읽고 다시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참 매력 있고 솔직한 느낌이 담긴 책이었다.

고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내 왜 자신이 이렇게 저항하는가를 곰곰 생각해보고 저항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는 고전에 몸을 맡겨야 한다.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고 참으로 낯설다는 것, 거기에 고전의 가치와 의의가 있다는 게 저자의 믿음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도발적이며 독자의 평온을 뒤흔들어 놓는다. 카프카는 “파국‘처럼 우리에게 다가드는 문학작품들, 우리 속에 ’얼어붙은 바다‘를 부숴버릴 작품들”을 바란다고 했다. 그런 작품들을 우리는 “어느 혹한의 겨울날에 숨 쉴 때 마다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살을 파고드는 것처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뜨려야 한다.-P898

 

2009.05.botongsaram

 

고전읽기, 위대한책들과의만남, 한다면해, 보통사람,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