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은 후 단숨에 그녀의 팬이 되었고 나온 책은 다 읽어야지 생각하며 속죄를 들었다. 역시나 전체적인 분위기에 우울함과 어둠이 묻어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극적인 소재로 연신 정신없이 밀어 붙인다. [속죄]는 전체적인 느낌이 [소녀]보다는 [고백]과 비슷하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고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하는 점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면이 비슷하다. 이 책의 소재도 만만치 않아 [고백]이 불쾌한 사람이라면 이 작가를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온해 보이는 시골, 그곳에 한 아이가 전학을 오고 그들은 친구가 된다. 그렇게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던 것도 잠시, 전학 온 에미리가 성폭행 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같은 학교 안에 있었던 친구 넷은 에미리가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갔다 시체를 보게 된다. 마키가 아키코는 달리기를 잘하니까 에미리네 집으로 가고 유카는 파출소로 가고 사에는 선생님을 찾아보기로 하고 사에가 남아 에미리 시체를 지키게 했다.

 

사에는 여리고 작고 귀여운 소녀다. 그녀는 그때 이후 그 살인범이 자신은 성숙하지 않아서 선택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잡히지 않는 그 범인이 늘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가 자신이 어른이 되는 날,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며 자란다. 성인이 된 후에도 거부하는 마음 때문인지 생리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하는데 결혼 후 그 남자는 정상이 아님을 알게 되고 자신들에게 협박했던 에미리네 엄마와도 상관있는 것을 안 후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마키는 야무진 깍쟁이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의 기대 때문에 자신이 늘 똑똑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런 마키지만 그 사건이 있는 날 교무실에 선생님이 없어 갑자기 범인이 자신을 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모두가 범인을 기억 못한다고 해서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에미리네 엄마는 자신의 딸만 그렇게 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며 범인을 잡던지 속죄를 하라고 말했다. 그녀 역시 선생님이 된 후 어떤 일에 휘말리면서 자신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여자지만 오빠와 같이 곰으로 불리 우는 그녀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사건이 있던 날 고모가 사다준 예쁜 블라우스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는데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에미리네 집에 알리러 갔다가 밀쳐져 머리를 살짝 부딪쳐 범인의 얼굴을 기억 못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후유증이 생겼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분에 넘치는 짓을 하면 그 일처럼 불행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이다.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늘 그녀편이 되어준 오빠, 결혼 한 오빠의 집에 찾아간 그녀는 생각지 못한 일과 행동에 재정신이 아니게 된다. 마치 아줌마의 저주를 받은 것처럼.

 

유카는 병도 있고 예민한 언니 덕에 부모의 사랑은 눈곱만치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는, 그 사건이 있은 날도 엄마가 오지 않아 경찰 아저씨가 보호해줬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날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따뜻한 손길을 잊지 못한다. 관심을 받기 위해 도둑질도 하지만 그 아저씨는 다른 곳에 발령을 받아 떠나고 잊을 때쯤 경찰 형부를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형부의 손에서 그 따뜻한 감촉이 떠올랐고 임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얻지만 결국 다른 것은 잃는다. 처음부터 어긋나 버린 가족관계. 그리고 사랑. 그녀를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사실은 우리가 억울하게 휘말려든 것 같다는 거예요. 범인은 다섯 사람 중에서 에미리를 고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에미리를 노렸던 게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는 보물 상자의 반지가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반지의 주인인 아주머니와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p226

 

사실 딸을 잃고 모든 분노를 나머지 살아있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 쏟았다. 자신의 딸을 잃었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그녀는 그 결과가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복수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복수한 사람도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칼을 꽂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 참으로 씁쓸하면서 가슴 아프고, 이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비단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만은 아닐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꽉 막혀 있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말하기 보다는 속으로 삭히는 편이라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겠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우리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계기 하나로도 평화롭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는,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걸까요? 전 소설 속 유카의 고백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싶습니다.

 

‘이후 우리 네 사람은 같이 어울리지 않게 되었고, 사건에 관해서도 서로 얘기를 나눠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넷이서 좀 더 대화를 했더라면 이렇게 이상하게 꼬이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 안의 아픔과 어려움을 혼자 감내하며 키워 나갈 게 아니라, 용기를 내어 나 이렇게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해 보는 것, 그래서 타인과 같이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치유책이 되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고 나 혼자만의 푸념에 그칠지라도, 내 안의 고통이 내 입으로 말해지는 동안 어느새 그것이 먹물처럼 엷어져 가는, 공중의 먼지처럼 아스라이 흩어져 가는 신기한 경험,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체험을 통해 나 역시 타인의 말에 좀 더 겸허히 귀 기울이고, 그의 한숨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실수와 나약함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김미령(번역)

 

2010.11

고백, 미나토가나에, 한다면해, 서평, 일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