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에 마치 내가 그 입장이 된 것 같았다. 한 권을 숨 가쁘게 읽고 나면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가슴이 뭉클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기가 굉장히 센 아이 같기도 하고, 팔자가 뭐 이리 사납나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아련함이 뒤엉키는데 그것은 그 아이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이 자신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한편의 잔혹하고 무서운 동화를 본 듯한 감상에 젖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했다. 최근에 1980-1984년생 작가들의 책은 자신의 입장 말고, 상상 또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쓰려 하기보다는 지금껏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재조명해보고 조금 우울하게 표현해내는 것 밖에 쓸 줄 모르는 줄 알았다. 사랑 이야기건 사는 이야기건 그들은 항상 냉소적이고 패배자였으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 마치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도 글을 쓴다면 그 정도 소재밖에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바로 어린아이의 입장이건 할머니의 입장이건 대장의 입장이건 작가는 첫 작품이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능청스럽고 뻔뻔하게도 이야기를 잘 버무려간다. 그리고 냉정하고 거침없이 글로 표현해내고 가끔 유머도 잃지 않으며 비수처럼 꽂히는 마무리까지. 물론 마지막은 조금 비관적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단숨에 독자를 소설의 마지막까지 잡아끄는 기술이 부러웠다.

 

조금 격하긴 하지만 캐릭터 저마다 리얼함과 꼭 짚어서 어떤 인간인지를 나타내는 부분들에서 솔직히 좀 놀랐다. 생각 외로 너무나 다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것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일반 사람들과 조금 동떨어진 그들을 소설 속에서 잘 만들어냈다.

 

다방에 착한 마음씨를 가진 장미언니를 좋아하면서 소녀는 자신의 진짜 엄마는 저런 모습일거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 백곰, 그는 높은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취직도 못하고 광장 공포증 비슷한 것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장미언니와 소녀에게는 얼마나 아는 척을 하는지, 백곰을 바라보는 소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다룬 부분이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 맞물려 있는 부조리를 나타내는 것 같아 움찔하기도 했다.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백곰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고 제일 똑똑한 줄 안다. 그리고 자기보다 돈 많고 힘센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 다 옳다고 했다. 왜냐면 자기가 그런 사람이랑 동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자기가 그렇게 무시하는 언니가 사다주는 옷은 왜 입고 밥은 왜 먹나 몰라, 없어 보이게. - p46

 

 

태백 식당 할머니 편에서는 읽는 독자가 거의 그렇겠지만 펑펑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할머니와의 시간이 소녀에게는 너무나 행복하지만 곧 진짜 손녀들이 나타나면서 그 꿈도 깨지게 된다. 그리고 만난 폐가의 남자는 또 어떤가? 그 잘나고 머리 좋은 사람이 패배자가 되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숨어 살고 있다. 각설이패 대장 역시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감추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물론 술과 욱 하는 성질 때문에 늘 뒷감당이 문제지만 말이다. 작가는 안과 밖을 다 살폈다. 세상에서 말하는 패배자의 입장과 세상이 바라보는 승리자의 입장을 잘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안을 꼼꼼히 돌아볼 수 있게 해줬다.

 

2010.09.botongs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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