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판이구나.

이 책이 나온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 책은 지인에게 나의 가슴 속 괴로움을 토로한 뒤에 전해받은 것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이렇게 책을 골라 주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판 표지 디자인은 현재 저 그림인가?

내가 가진 것은 1판인데, 표지에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그려져 있다.

서양 근세사 수업 때 봤던 그림이 딱- 찍혀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수업 시간에 저 그림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들었었는데, 정말 세세한 물건 배치, 구도 등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림을 감상할 땐 정말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 같다.(물론 온전히 그림 자체에 빠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목부터 참 강렬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니..

내게 질문을 던지는 한편, 나를 위로해주었다.

진정한 내 권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그런 것이 내게 있는가?

괜찮아.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번역소설을 주로 읽다가 오랜만에 국내 소설을 읽었더니 확실히 차원이 다르더라.

단어와 문장의 그 깊은 맛이라니.

모르는 단어도 간혹 보여서 사전을 찾았다. 역시 인생은 배움의 연속.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았다. 상식도 넓고.(글 쓰는 데 엄청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끔 책에 나오는 대사나 생각에서 동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라는 말. 정말? 그래?

너무 큰 의미로만 본 것은 아닐까? 하긴 작은 부분이라도 힘들 수 있겠지.

누가 그랬다. 이타란 없다고. 모든 것이 이기라고.

 

3판의 서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판 평론에서는 이 소설을 '판타지'라고 했다.

하지만 난 구성이 좋아서 그런 지 몰라도, 굉장히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인터파크에 나와 있는 3판 출판사 서평엔 짧게 '환상은 현실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군.)

그리고 '클림프'의 <유디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 등 그림을 등장시킨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아~미술사 공부하고 싶어라.

 

얇지만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내게 많은 질문을 던져 준 책이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나는 나를 파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계속 괴로워하는 거겠지.

 

p.12 고흐의 자화상에 탐닉하는 자들을 나는 유심히 바라본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을, 실존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서도 내밀한 쾌감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p.33 진실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거짓말은 사람을 흥분시켜.

→그래서 난 불편한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

p.118 나이 서른이 되면 사랑도 재능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맞아. 사랑은 재능이야. 일단은 의지가 있어야 하고. 운도 뒤따라야 하겠지.

p.123 집착의 강도는 어떤 일에 들인 시간의 양에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