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학생이던 김근하 군이,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난 채 어딘가에 살아있을 진범에게 살해당한 뒤, 그 사건에 의도된 대로, 혹은 의도치 않게 연루되었던 수십명의 인물들은 고통 속에서 죽어갔거나, 어렵게 그 몸서리치는 지옥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연루된 자는 모두 피해자였던 바로 그 사건, 과연 피해자는 누구에게 피해를 입었는가?

 

[김기철씨는 왜 요절했는가]는 조갑제 기자가 대한민국 약자의 인권을 외치던 시절, 그가 취재했었던 '김근하 군 살해사건'의 기록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근래 읽게 되는 다른 사회과학책과 달리, 조갑제 기자는 어떠한 일반론도 펼치지 않습니다. 사건의 드라마틱함 그 자체만으로 독자의 분노를 사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이들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법은, 도리어 정직한 이들을 모두 무너뜨립니다. [김기철씨는 왜 요절했는가]의 김기철씨에게는, 성정이 순박했고, 매 재판과정에 정직하게 임했던 것이 죄라면 그 죄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42년간의 짧은 생을 결혼 한 번 하지 못하고 서서히 마쳐갔습니다.

 

이 책은 그리고 <한 집념의 검사가 만든 지옥도>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지옥을 그린 것은 열의에 찬 검사였습니다. 그렇다면, 탄탄대로를 달리던 김태현 검사가 지옥을 그린다는 이 드라마의 대본은, 누가 짠 것인가?

 

김금식이 대한민국 사법부에 반기를 들게 된 것은, 사법부가 김금식이 오히려 폭행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범죄 전과가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않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던 김금식은, 그 순간 악인이 되기로 합니다. 김금식은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김근하 군을 죽인 것이 자신이라는 허위 엽서를 작성해 흘립니다. 그 엽서를 본 검사는 김금식에게 다가오고, 김금식은 자신을 믿지 않는 사법부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범인인 척하고 갈 데까지 가다가 최후에 변론에서 모든 것을 뒤집어 사법부를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김금식은 뛰어난 두뇌로 모든 거짓 가공의 상황을 만들어낸 뒤 맨 나중에 탈출하기 쉽도록, 가장 무고할 것 같은 인물들만을 골라 공범으로 지목합니다. 친분이 있던 김기철이 끌려왔고, 김근하의 삼촌인 최형욱이 끌려왔습니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만한 교도소 1일간 불법 출소 시나리오를 만들어, 그날 당직을 섰던 교도관 전원이 끌려오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마침 김근하 군 살해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전경렬씨가 구속되어 조사를 받다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수사는 답보상태였습니다. 언론은 사건의 진전을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종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특종을 1초 먼저 잡아 송출한다는 것은, 달리기 경주에서 1초 먼저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조갑제 기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특종이라는 것은 확실한 물증이 없을 시에도,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승부수를 던지듯 송출을 합니다. 특종이 틀렸더라도, 언론이 지닌 휘발성으로 여론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하면 되고 여의치 않다면 정정기사를 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특종이 맞다면 그 기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예를 얻게 됩니다. 언론은 일제히 김기철, 김금식, 최형욱의 잘잘못을 분석하고 판단하기보다, 이들에게 자극적인 단어로 신중한 판단 없이 '진범 확보','살인마 모습을 드러내다' 등의 맹공을 들이붓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명예욕에 사로잡혀있던 김태현 검사는, 사건에 대한 사리판단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마치 김금식에게 끌려다니듯이 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김태현 검사와 그 수하 인물들이 협조자인 김금식과 정대범을 잘 대접해주는 모양인 듯하나, 실제로는 김금식에 의해 김태현 검사며, 정대범이며, 한없이 이용당했을 뿐이었습니다. 김태현 검사는 폭주기관차가 달리듯, 무고한 이들을 계속해서 고문해 나갔으며, 이들에게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김태현 검사는 사건의 앞뒤가 안맞고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위에서, 혹은 법정에서 아무리 논박해도, 그의 집념이 결국 멀쩡한 이들을 죄인으로, 반신불구자로, 혹은 평생 망령에 사로잡혀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이 더욱 더 범인에 목말라하고, 범인 잡기를 서둘렀던 이유는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만 있는 죄인의 특권인 공소시효는 사건 발생 후 15년까지 죄인을 잡지 못하면 그 죄인이 국가에게 용서를 받는 제도를 이 책을 읽고 더욱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위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인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근하 군의 아버지, 김기철 등은 후유증 및 충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다시 복직되긴 했지만, 당시 근무했던 교도관들도 충격에 휩싸였고, 정대범, 최형욱 등도 고통의 망령 속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가겠지만, 인물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이 드라마의 제작자, 대한민국은 살아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내렸습니다. 검사들의 명예욕, 언론의 무비판성, 사법부의 직무유기, 공소시효의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가 김기철 씨를 비롯한 그들이 죽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더 이상 법,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에 대한 ,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 있어서는 안되기에, 이러한 과거의 전근대적인 기록은 좀 더 많은 독자의 손을 거쳐가야 하겠습니다.

 

 

김근하군살해사건,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