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대규모 정전사태> 이후로 반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반 년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 전기에 관한 인식의 발전, 정부 각계의 반성, 자구노력에 관한 발전은 아무 것도 없었음이 확연해졌습니다. 2월 13일 <전력 계통운영 통합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지조차 못하면서 18회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9.15 대규모 정전사태>도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공사가 통합되지 않아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력거래소를 한국전력공사와 통합하여 전기전문가가 경영을 하여 비효율성을 타파할 수 있도록 추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다른 여야 쟁점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한 전력노조위원은 '모든 것이 끝났다'며 고개를 떨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다시금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고, 전력노조위원장 김주영씨의 목소리를 다시 새겨들어야 합니다.

 

[신의 직장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는 한국전력 노조위원장 김주영씨의 책입니다.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에서 무슨 노동자의 처우개선이 더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기에? 하는 짧은 생각에 제쳐두었던 책이었습니다. 9.15 대규모 정전사태때도 한전의 무능함을 탓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쳐보면, 독자들은 순수한 전기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진 '합리적 개혁주의자' 김주영위원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는 "전력은 권력이며, 인권이다." 라고 써 있습니다. 김주영 위원장이 말하는 인권이란, 국민의 인권을 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양질의 전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전기를 공기처럼 당연한듯이 누리게 된 것은 사실 꿈만 같은 일이라고 김주영 위원장은 말합니다. [신의 직장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의 첫 장은 전기가 공급된 역사를 통해 깜깜한 밤이 계속되던 조선에 어떻게 설렘의 불빛이 들어왔고, 전후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나서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1987년 대한민국 전기보급률 98.1%를 달성했는지 소개합니다, 둘째 장에는 어떤 악조건속에서도, 심지어 전쟁 중 언제 포탄이 떨어져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지 모르는 채 추위와 막연함과 싸워야 했던, 그리고 전기를 대한민국 땅끝까지 부설하자는 신념을 가진 전기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김주영 위원장은, 다른 노조위원장과는 달리(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조위원장에 대한 이미지, 편견과는 달리), 독자들에게 이러한 전기노동자들의 희생과 사고가 잇따르니 이들이 좀 더 안전한 여건에서 일해야 한다고 무턱대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신념과 노력을 알아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막아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구조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민영화'를 막자는 것입니다.

 

구조개편의 첫 시작은, 적자가 이어지는 방만경영이 이루어지는 현 상태에서 효율성을 추구해보자는 취지로, 한전을 여러 조직으로 분할해 각 조직이 경쟁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발전부문, 도매부문, 그리고 소매부문의 경영권을 모두 민간으로 넘기면 흑자경영이라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대한민국 공기업 민영화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설립목적을 달성했으며, 민간과 경쟁할 이유가 없어진 대한항공, 조선공사, 대한통운 등은 1960년대부터 정부가 주도하여 민영화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정부투자관리기본법>에 의거해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이들이 한국전력을 국민주 방식으로, 즉 공기업에서 근무하던 기존 근로자가 직접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하려 했으나, 1992년 증시가 침체됨에 따라 실패하고 맙니다.

 

1994년부터 민간에 경영권을 이양하고자 일반경쟁입찰에 들어가게 되었고, 1997년 6월에는 급기야 <전력산업구조개편위원회>가 출범합니다. 전력산업전문가, 노조 등이 참여하지 못하고, 경영자와 실무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결국 개별발전소를 그룹화할 것이나, 매각을 할 것이냐 하는 의미없는 논쟁만 하다가, 분할사유화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위원회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1999년 1월 21일, 구조개편정책이 확정되는데, 발전부문은 5~7개로 나눠서 경쟁하고, 배전부문도 분할을 한 뒤. 발전부문과 배전부문이 양방향 입찰을 하고, 소비자도 이 둘의 조합을 선택하면,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정부는 이 밑그림을 3~4개월간 짰으며, 이는 졸속이라고 김주영 위원장은 비판합니다.

 

그는 전력사업은 규모의 경제, 즉 생산량을 늘릴수록 단위당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원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소수 사업체 간 경쟁을 하게 되면, 부패한 기업, 관료들이 담합을 할 가능성이 높아 기존의 안정적이고 싼 가격에 국민들이 전기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력에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독점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민간으로 전기가 넘어가게 되면, 공급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긴급상황 시 중앙통제실 개념이 갖춰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익성을 위해 국민의 인권은 고려하지 않고 전력공급을 일부러 중단시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외국 기업으로 매각을 하게 된다면, 환율문제 때문에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되고, 현재 외국에 비해 낮은 한국전력가격이 외국과 평균을 맞추고자 상승하게 될 것이며, 자원이 나지 않아 에너지 자급률도 떨어지는 우리나라의 현실,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현실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EU의 전력자유화지침에 따른 영연방의 대처리즘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했고, 엔론도 신용사기, 회계조작 등으로 파산하면서 전기료가 폭등하거나 피할 수 없는 정전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등 민영화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기시세차익이라는 욕심에 눈이 멀어 시행착오를 이미 겪었던 외국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싸고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정부는 눈과 귀를 열지 않고 민영화, 선진경영만을 외칩니다.

 

결국 김주영 위원장을 필두로 한 한국전력노조의 투쟁 끝에, 노사정위원회는 2004년 배전분할을 중단하는 대신, 배전부문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민영화는 하지 않되, 경쟁력 강화도 할 수 있는 절충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김주영 위원장은 승리했습니다. 민영화라는 폭주기관차를 발전회사의 경쟁 선에서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국제적인 민영화 압력에 정부가 현혹되어 불확실한 이익을 위해 확실한 이익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한전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언론 및 국민의 동네북 신세가 된다는 것도, 전기료라는 전기 이용료의 개념을, 전기는 당연히 내가 갖춰야 할 것인데 왜 돈을 내야 하는거지? 라며 억지로 납부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전기세라고 칭하는 국민들의 불평도, 그는 노조위원장의 이름으로 당당히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고지식하면서도 합리적인, 전기를 사랑하는 한 인간이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주영씨 2002년 한국전력 노조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가 노조위원장을 이어갈 당시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출판된 책입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노조위원장자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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