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시절,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푸른 눈의 러시아인은, 대학에서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폐쇄적이고 부패한 국가인 줄 알았던 소련과 대한민국이 본질적으로 별다른 점이 없다는 점에 실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을 더욱더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저자 박노자 교수는 한국인이 아니기에, 한국인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시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그는 일침을 가합니다. 유교사상을 악용해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자, 그리고 이 독재자에게 휘둘리는 북한과 남한 주민들,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을 살아가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회의 전근대성, 돈으로 학위를 사고 조교나 비서를 하인 부리듯이 하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한민족에 대한 우월주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동남아, 몽골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 국익만 바라보는 맹목적인 언론, 폭력과 폭언이 난무한 군대를 남자라면 반드시 가야하고 가지 않겠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하지도 않으려는 집단주의 등을 말합니다.

 

박노자 교수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전혀 틀린 부분이 없다고 봅니다. 마치 진보진영의 교과서를 보는 듯 그의 주장과 논리는 매끄러워 보입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불편했습니다. 저도 대한민국 독자로서 머리를 몇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중 몇 대는 '계몽적으로 머리가 트이는' 느낌이기도 했지만, 몇 대는 '말 그대로 얻어맞았으니 몸을 추스려야 한다'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을 분별있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박노자 교수는 대한민국이 혼탁한 정글과도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펼치는 논리는, 우리 개개인이 모두 평화를 사랑하게 되어 나쁜 정글을 함께 없애자는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이상적인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그가 추구하는 논리에 끼워맞추려고 한다면, 이는 프로크루스테스가 침대의 길이에 맞춰 손님을 늘여 죽이거나 잘라 죽이는 등의 폭력을 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김어준씨도 [닥치고 정치]에서,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절대적 논리에만 의존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바람에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등으로 군대에 보낸 자식을 잃은 유족에게 당신의 아들의 손에 스러져간 북한 군인들의 넋을 위로해야하고 이들에게 연민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혹은 북한군을 무찌른 대한민국 장병들을 격려하지는 못할 망정, 이들이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폭력입니다. 국가가 물리적이든 외교적이든, 혹은 국부 측면에서든, 힘을 내재하고 있어야 적들이 넘볼 수 없게되어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자명한데, 평화로워지려면 이들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군대 내 상호간 명령과 복종 관계는 잘못되었으니, 군대 내 이런 계급문화가 사라져야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군대를 지속시킬 수 없음을 말합니다. 군대 업무, 군대 훈련을 다같이 분담해서 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강제적 계급문화와 명령-복종 관계가 필요한게 사실입니다.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한 한 유족이 다른 친척들로부터 외면받아 제 2의 고통을 겪고 있다던 TV다큐 속 사연이 떠올랐습니다, 용기를 내 살인범을 용서하러 갔다가 나는 이미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며 니 용서 따위는 필요없다고 당당히 외치는 죄인을 바라보며 무너지는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엔 악인도 충분히 많고, 논리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일도 충분히 많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식의 틀을 깨야 하는 부분도 분명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종주의 관련한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한민족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인과 몽골인을 속여 착취하고 그들 위해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포용해 나아가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인종이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인과 중국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조센진으라고 그들이 부를 때 우리가 감정이 앞서 그들을 원숭이니 짱깨니 하고 불러버린다면 그들과 우리는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조센진이라는 말에 이유없는 열등감을 가지기에는 세대가 이미 여럿 지났다고 봅니다. 당연히 피부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그를 말도 잘 할 줄 모른다며 무시하기보다는 어눌한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에 맞게 한국말로 대답해 주어야 비로소 우리가 아량넓은 한민족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여,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프랑스에서만해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한 달 넘게 파업을 하더라도, 프랑스 국민들은 저 파업때문에 우리의 발이 묶였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어련했으면 저럴까 하며 이해하면서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넘게 걸어 출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메이저급 언론은 노조 활동을 통해 시민의 발이 묶인다는 점을 노조원들이 파업을 하게 된 원인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부각시키는 면이 있어왔었는데,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이러한 부분에 좀 더 비판적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 아니 [당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급진적인,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기에 제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