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주저없이 별 다섯개. 잘 생긴 남자와 못생긴(그것도 아주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니.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연인의 만남에 이은 연인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표지를 제대로 보고 또 봤음에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런 백그라운드에서 출발한 글일줄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그 중 한 시녀의 얼굴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표지. 그 시녀는.. 지금 시대라면 경범죄에 해당하는 벌금이라도 내야할 만한 얼굴이다. 이런 시녀가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세계의 어디쯤 될까?

 

물론 이 책의 뒷부분에는 생각지 못한 깜짝 반전이 있다. 그 반전은 이 책을 다음에 꼭 읽기로 한 집사람에게도 스포밀지 않은채 그대로 두었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겉 껍질에 불과한 외모에 모두들 한마디씩, 한 눈길씩 주며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며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다.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고, 사회에서는 혼자지낼 수밖에 없는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간만에 책을 읽으며 한 부분을 좋은 구절이라 생각되어 접어두었다.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바우는 걸까. (중략) 왕조의 쇠퇴와 몰락을 줄줄이 외게 하면서도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가. 지층의 구조를 놓고 수십 조항의 문제를 제출하면서도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아메바와 플랑크톤의 세포구조를 떠들면서도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라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영어나 불어의 문법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정작 모두가 듣고 살아야 할 말의 예절에는 소홀한 것인가. 왜 협력을 가르치지 않고 경쟁을 가르치는가. 말하자면 왜 비교평가를 하는 것이며 너는 몇 점이냐 너는 몇 등이냐를 외치게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엇을 입었고 너는 어디를 나왔고 너는 어디를 다니고 있는가를 그토록 추궁하는가.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왜 그토록 못을 박는가. 그토록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왜이며, 그 조항들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그냥 모두를 내버려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냥 모두가 그 뒤를 쫒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러워할수록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이며, 보이지 않는 선두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교육하는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가 마음에 더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박민규, 죽은왕녀를위한파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