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방법>

 

이 책은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들>이라는 제목으로 3권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그 중 1권을 번역한 것이다. 혹시나하여 검색해보니 2권과 3권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스키너는 이 책의 서문에서 '연구대상인 텍스트를 저자가 그것을 씀으로써 어떤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해하게 해주는 지적 맥락속에 놓는 일'을 이 책의 과제로 선정했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 이야기하자면 텍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을 이제는 더이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가 가진 사실에도 주목하면서 사회적 맥락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저자의 맥락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에서 오스틴으로 이어지는 화행이라는 용어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는 개념사와 관련하여 단순히 핵심 단어의 의미 혹은 의미변화를 서술하는데 그치지 말고, 적용기준, 감수성, 의식과 이데올로기 등의 사회적 맥락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코젤렉의 작업을 논하면서 개념의 변화가 철학사 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개념 변화 자체보다 사회적 삶의 변화에 더 초점을 두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론 이야기의 끝 부분에 잠시 소개되긴 하지만 말이다)

 

이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과 10장은 서문과 회고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과 회고는 음악의 인트로와 아웃트로로 처럼 처리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한다면 나머지 2장부터 9장까지의 논의들을 좀 더 명확이 할 수 있다. 다만, 회고에서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갑자기 코젤렉의 이야기를 꺼낸 부분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쨋거나 서문의 제목인 '그들의 방식으로 바라보기'라는 말을 이해하는데는, 마지막 10장을 읽고서야 조금 맥이 잡혔으니, 스키너라는 역사학자의 학문의 깊이와 서사의 방식이 어느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다.(물론 나의 학문이나 지력의 깊이가 얕음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2장 역사학의 실제와 사실 숭배와 3장 해석, 합리성, 진리, 그리고 5장 동기, 의도, 해석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식에 대한 특별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장이다. 2장은 워밍업의 기분으로 읽어나가다보면 그 내용이 쉽게 이해된다. 3장과 5장의 단어(해석, 합리성, 진리, 동기, 의도, 해석)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단어로서 나머지 장들은 이 단어와 관련된 저자의 논평과 비평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4장 관념사에서의 의미와 이해라는 챕터가 왜 뜬금없이  중간에 끼어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쓰여진 시대, 쓴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관념과 그 사람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시대에서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토픽을 가지고 과거를 연구하지만, 우리는 과거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수용의 가능성, 또는 무비판적 실행, 말함으로써 무엇을 행하고자 했는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사고와 그들의 사고 사이에 접점을 찾아 그들이 과연 무엇을 말함으로써 행하고자 했는지 그 근원적인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키너는 사실이 순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상태로 놓여있다고 가정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만큼 불투명성과 복잡성이 강조되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역사학 자체를 해체하고 탈정립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는 사실에 대한 회의를 수용하면서 역사학의 관행(사실의 추구)을 좀 더 역사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혼란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는 중립적인 길을 가고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쪽도 잘 모르겠으니 나는 중도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모두 이해하고 공부하며 학문적으로 습득한 후에 나의 길을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 책은 이전에 읽은 <역사가 사라져 갈 때>와 함께 절대와 상대의 중간지대를 잘 갈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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