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 인줄 알고 첫장을 열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의 이름을 볼 때 일본책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할거 같아요. 그런데 첫장을 열고보니, 웬걸, 포르투갈 작가라니. 이거 원 당황스러워서

  가난하게 태어나서 젊었을 때는 공산당활동을 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분이라니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을 했죠. 공산당활동을 했다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나 폐해에 관해 날카롭게 집어내리라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개봉도 했죠. 2008년 11월에 개봉했네요. 처음에는 <무방비도시>하고 헤깔렸었는데, 그건 아니고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더군요.2008년 11월에 개봉했으니, 딱 1년됐네요. 어제 아는 형이랑 이 책이야기를 했어요. 그 형은 영화로 봤다는데 인상적인 영화였다고 하더군요. (그 형은 영화광이예요. 왠만한 영화는 다 봤죠.)

  이런저런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헐.(이럴땐 이 표현 이외에 다른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어요. 헐은 정말 잘 만들어낸 인터넷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헐. 헐을 한 열번은 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걸 어찌 말로 설명하지. 한 쪽에 엔터를 치지 않고 주욱 써내려갔어요. 대사도, 설명도, 생각도, 묘사도. 왼쪽에 사진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런지......

  사진 보이죠? 작아서 안보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저런식입니다. 전체 쪽수도 461쪽. 아마 일반적으로 우리 소설에서 읽는 그런 형태를 취했다면 세권도 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재미있었습니다.

  백색공포가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지금 신종플루가 처음 퍼질때처럼, 눈이 멀어갔죠. 처음 정부는 이 사태를 막아보려고 사람들을 격리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처음 도착한 사람이 6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260명 가량이(적정 수용인원을 초과해서) 격리됐어요. 이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죠. 전염성이 아주 강해서 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누구나 눈이 멀 수밖에 없기때문에 군인들이 이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킨다기보다 나오지 못하도록 총을 들고 위협했다는게 맞는 말이겠군요. 실제로 죽은 사람들도 있고요. 

  단 한명, 안과 의사의 아내. 이여인은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죠. 남편인 의사를 지켜주기 위해 눈이 안보인다고 속여 병원에 들어왔어요. 정신병원에서의 눈먼사람들의 행위는 인간의 본성이 과연 선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정도로 끔직했습니다. 인간은 어느 곳에나 조직을 만들고 계급을 만들고 지배하고 지배 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인간이 어디까지 원초적이 될 수 있는가...... 눈먼 장님들끼리 모여, 기초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들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참혹했고 이 여인은 그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 책 한켠에(196쪽에) 이렇게 적어두었더군요. 
  자포자기(절망)의 문제, 위생의 문제, 식량의 문제, 폭력의 문제, 시스템(조직)의 문제, 성(性, sex)적인 문제, 기본 욕구 충족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관념(관습)의 문제......
  처음으로 몸서리 쳤던 이 책의 장면은 의사가 화장실을 갔다가 휴지가 없어서 찾고 있을때였죠.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사람도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온 장님이었는데, 그는 얼떨결에 바지를 끌어올립니다. 윽윽. 이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그 사람이 느꼈을 비참함. 찝찝함. 더러움. 그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서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 이후는 그럭저럭 읽어나가긴 했는데, 이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인간의 존재가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눈이보이지 않는 사람들끼리 살게되자 그곳을 지배하려는 집단이 등장했죠. 강간을하고, 폭력을 행하고, 식량을 독점했어요. 모두들 부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항하지 못했죠.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함께 있었어요. 그는 이제 막 눈이 먼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죠.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 해결되죠. 의사의 아내는 결국 가위로 우두머리를 찔러 죽입니다. 

  눈먼자들, 격리됐던 자들이 모두 막사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불이 났기 때문인데, 정신병원이 전부 불에 탓죠. 그곳을 지키던 군인들도 사라졌습니다. 의사와 아내를 비롯한 6명은 도시로 나왔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장님이 되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공황. 그런데 모두 눈이 멀었으니 조용한 공황이라고 해야할까요. 싸우지도 못하죠. 그런데 먹을 것은 필요하겠죠. 도시는 오물로 더럽혀졌고, 개들은 원래의 본성이 드러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다녔어요. 

  이때부터는 생존을 위한 문제에 직면한 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이전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고 하는 과정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희망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결코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혼자 눈을 뜨고 있는 여인, 의사의 아내가 지쳐갔죠. 그들은 의사의 아내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일 먼저 눈이 멀었던 사내가 갑자기 눈을 떳어요. 바이러스의 힘이 약해졌는지 특별한 원인은 없이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눈 뜬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죠. 그러면서 여인은 백색증, 즉 눈이 멀어버립니다.

  아.... 이렇게 다 읽었습니다. 전 당구를 좋아하는 편인데, 어제 당구 모임(친구들과 만든 오프라인 모임이죠)에 나가서도 빨리 쳐서 1등하고 한 30분 책을 읽었답니다. 도저히 손에서 놓을수가 없더군요.

  음, 뭐랄까.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하나. 읽을 때의 흥분이 아직도 남아 있어 뭐라고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바이러스. 인류 최대의 적이 될 것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건드린 책이죠. 그런 상황을 아무리 반추해보아도 답은 없을 듯해요. 온?어 ’난 안그럴 거bsp; ’안 그럴거야’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누구나 다 보이지 않는데,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만 그런게 아니고 모두 그러니 희망을 갖자, 이런 이야기도 사실 그 상황에 직면해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요즘 신종인플루엔자때문에 전국이 떠들석하고, 저같은 경우도 집에 고위험군에 속하는 가족들이 많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신종플루가 대유행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결국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주고 자연과 함께 삶을 살아가야 자연이 우리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들을 주려 하지 않을까요. 여러가지 생각과 만감이 교차하는 책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오래된 미래>를 펼쳐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