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의 영혼을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밖으로 밀어내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야. 영혼에 새겨진 모든 걸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슬픔이든, 악몽이든, 기쁨이나 추억같은 것들도 너무 무거워지면 인간을 짓눌러버리거든. 어쩔 수 없이 하루에 그만큼씩은 자신을 머리카락에 적셔서 밀어내야 해."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여 방랑하는 젊은 영혼, 곽세라의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조금은 낯설은 작가 곽세라! 그녀의 글을 접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우연에 가깝지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을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이름이 그저 낯설지만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 우리는 모두 간절히 원하는 1분을 위해 하루의 1339분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 동시에 그 1분을 내어주고 나면 지옥같은 어둠을 경험하는 존재.... 바로, 우리.

 

"달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상대역이 없으면 우린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어. 누군가가 되쏘아주어야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되지..."

 

여주인공 류는 (다들 그렇게 부른다) 극단 '츠키'의 단원으로 극단장인 미나 선생님으로 인도를 받아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 지는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 즉, '뮤토'가 된다. 누군가의 소원속으로 들어가 어떤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들의 환환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뮤토는 그만큼 알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달빛에 취한 요정들처럼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것이 결코 현실이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 뮤토. 끝도 알 수 없는 환희와 절대고독 속에서 뮤토인 류는 그것을 그만두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젠 무섭지 않아?"

"무서워. 견딜 수 없이..... 항상 그랬어."

"지금도..."

 

인간은 때로 무한히 외로운 존재가 된다. 그래서 자신이 염원하는 1분을간 위해 나머지 시간들을 기꺼이 견뎌낸다. 외로움을 잊게 해 줄 선물. 바로 그 1분을 위해 때론 가여울만큼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한 1분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어쩌면 참고 있다고 봐도 옳을 것이다. 적어도 책 속의 인물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불완전한 한 존재에게 그 1분이 완성되는 순간, 죽음으로써 완성을 대신하므로... 하지만 작가는 판단은 섣부른 것이라고 말하는 걸지도 몰랐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삶을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변덕스럽고, 난폭하고, 불친절한 이 세상의 순간들이 좋아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영혼을 팔아버린 것이 아닐까...."

 

곽세라 작가의 소설은 지극히 서정적이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동시에 관념적이다. 너무 차가워져 있어서 흠칫 놀라게 하는 얼음조각이 아니라 적당히 녹아져 있는 청량한 얼음조각이랄까? 그래서 그녀의 글들은 차분하고 매력적이다. 판타지적 요소와 서정적인 노래 가사 같은 부제들도 한층 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힐링에 관한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누군가 '내가 잊고 있었던 간절한 소원'이 잊혀질 즈음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 주변에 '뮤토'가 없는지 찾아볼는지도 모르겠다. "어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지?" 라는 말을 하며 슬며시 미소 짓는 뮤토와 남은 인생의 첫날을 완성하고는 이렇게 전화를 걸겠지? "감사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