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울어본 적이 있는가?

그 일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가?

쉽게 동화되는 주책맞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주책맞은 사람이다.

 

나는 책을 읽고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소설책을 읽고- 운 적이 딱 두 번 있다. <등대지기>가 최초였고, <엄마를 부탁해>가 그 두번째였다. 두 작품의 특성을 보면 아마도 나는 부모와 나라는 주제에 꽤나 많은 감상을 지닌듯하다. 그리고 소중한 어떤 무언가를 알고도 잃어버려 가고 있는.... 그  느낌에 대해서도 민감해하는 것 같다. 알고도 잃어가는 그 낯설은 느낌.... 혹시 경험해 본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책 <두근두근 내 인생> 을 읽고 나는 또 울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많은 '나'란 사람인 건 인정하지만 다 큰 어른이 꺼이꺼이 울다니, 나로써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최초로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두근 두근" 심장소리와 만난다. 엄마의 익숙한 소리와 함께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기쁨이란 솜사탕에 대해 알게 될 즈음, 타는 열기로 다 녹아버린 듯한 빈 막대기만 남듯, 아이는 늙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병에 걸린 아이는 결국 서른 넷의 젊은 부모를 두고 세상을 등지고 만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얘기만 놓고 보자면, 신파다. 그것도 최상급의.

그냥 이 정도였다면 이 소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김애란은 이제 신예작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놓아도 될 듯하다. 그녀가 그려내는 <두근두근 내 인생> 소설속의 세상은 왠지 노년들이 그리는 공허함이 있지만, 그런 반면에 소년들이 그리는... 그래서 따뜻해서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기도하다. 봄날의 말간 햇살처럼 곰살스럽고, 이야기 속엔 무언가 인간냄새가 녹아있다. 전작들에선 현대문학의 희망찬 기대주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제는 제법 안정 궤도를 타고 올라 선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무척 반갑고 기쁘고 설렌다.

 

요새 드라마들처럼 전개가 빠른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책 속의 문장들은 어쩐지 좀 느리다. 그 무게가 깊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가끔씩 쉬어간다.  한번쯤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 가는 쉼표 속에서 이상하게도 글을 읽어가는 속도는 빨라진다. 한 평론가는 뒷장이 얼마 안남을수록 조바심이 난다고 했고, 읽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어찌보면 드라마 소재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기가 막히게 한 상 차려낸 작가의 글 솜씨가 마냥 부럽다. 젋다면 젋은 작가가 뚝배기처럼 오랫동안 따뜻한 상을 차려냈고, 나는 작가의 글 속에서 감히 행복했다.

 

수많은 말을 다 내 앞에 내놔도 나의 부족한 문장력으로는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알면서도 슬프고, 모르면서도 아는 것 같은 슬픔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해준 그 사람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나도 소설속의 아름이 처럼 "아프면서 오래 사는 자식과 건강하지만 짧게 살고 가는 자식"을 고를 순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부모와 자식들은 지금도 다들 그렇게 '선택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사년, 우린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아도 돼."

 

만일 하느님이 '너한테 자식을 주겠다.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첫째 아프더라도 오래 산다. 둘째 짧게나마 건강한 삶을 누린다.' 할아버지라면 어떡하시겠어요?

....(중략)....

"아름아."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중략)....

"할아버지,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