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남녀가 있다. 그들은 한집에 살고,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얼핏 그들은 연인이고, 동시에 부부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불행해지기로 결심했다. 마치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죽음이라도 맞이할 듯 그들은 행복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가 어느 날, "안녕(아마도 일본어 원서에는 '사요나라, 사요나라' 라고 있었을 듯)" 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떠나버렸다. 남자는 덤덤하게도  "...... 행복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녀와 나, 행복해질 것 같았습니다." 라는 말만 할 뿐이다.

 

얼핏 이상한 구도다. "에이, 뭘 또 행복해지면 안돼? 말도 안돼? 뭐가 그래?" 식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들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그렇다. 그녀는 피해자다. 그리고 그는 가해자다. 그런데도 둘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함께 불행해지기로 약속했기에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서로는 상처였다. 지난 날 씻을 수 없는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단 하나의 연결 코드였다.

 

책 속에 빠져들면서 문득 선인장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게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일전에 들은 사랑이야기의 일종이었다. 선인장은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안아줄 수가 없다. 가시가 너무도 깊이 파고들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선인장들은 가까이 다가선다. 상처를 낼 수록 그들이 더욱 사랑한다는 증거다. 사랑은...... 어쩌면 상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한동안 이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고,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통해 상기되었다.

 

집단 성폭행. 강간. 그 사건 속에 두 남녀, 가나코와 슌스케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오래된 상처. 마치 낙인처럼 지울 수도 , 덮을 수도 없는 그 시간들 속에 둘은 불행해 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때론 처연하게, 때론 잔인하게...

 

하지마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참 다행이다. 불행해지는 것은 못참아, 라는 심정이 아니라 그들이 소설 속에서나마 서로를 용서하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그렇다. 잊을 수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 상처이지만 그들은 피해자 임과 동시에 가해자이다. 1과 1이 만나 2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때때로 어떤 1과 1은 0이 되기도 한다. 독자로 하여금 그들이 새로운 0이 되기를 희망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힘이다. 오랜 이별을 뜻하는 일본어 "사요나라, 사요나라" 라는 제목 또한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나코는 진심으로 "사요나라"를 외친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래된 자기 상처와의 이별, 어쩌면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