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피서의 한 방법으로 추리소설 <구부러진 경첩>과 만났다. 세계추리소설 애호가들을 매료시켰다던 그 소설! '도대에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걸까' 하는 의문 반, 호기심 반은 도저히 불가능한 사건의 전말로부터 시작됐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부정하고, 그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 '내가 바로 존 판리라는 사람이오'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서류상 존재하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이 그 사람임을 주장하는 것일까? 어느 날 두 소년이 타이타닉호에서 우연히 만난다. 한 사람은 가난한 자이고, 한 사람은 부(富)에 지친 도련님이다. 둘은 서로의 위치를 바꿔서 지내보기로 했고, 그 날 사고가 터지면서 둘의 운명이 뒤바뀐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사람임을 주장하는 바람에 기드온 펠 박사는 특유의 영민함으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나간다.

 

추리소설은 보통 분노, 복수, 쾌감등의 이유로 살인이 저질러지곤 한다. 또한, 그 사건이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그 과정의 풀이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다. 가끔 추리소설속엔 풀리지 않는 퍼즐 같은 게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것을 교묘하고도 영특하게 풀어나가는 주인공을 보면 '그것은 어쩌면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기드온 펠 박사도 그런 영민함을 지닌 사람이고, 후에 진짜 존 판리는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비록 진짜 존 판리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진실에 상당히 가까이 갔다는 것만으로 펠 박사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는 편지를...

 

"친애하는 박사님께...

예. 제가 범인입니다. 저 혼자서 그 사기꾼을 죽였고 박사님을 놀라게 한 모든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박사님께 이 편지를 씁니다. 첫 째, 진심으로부터 박사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둘 째, 그 이상 사건을 잘 처리할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방에서 모든 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저를 끌어내서는 집을 나와 달아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방식에 감탄한 나머지 제가 박사님의 추론을 정확히 따랐는지 확인하고 싶은 정도가 된 겁니다. (중략) 셋 째, 정말로 완벽하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존 판리 (패트릭 고어였던)로부터 - 

 

추리 소설 속의 사건들은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하지만 결국 풀린다. 모든 것엔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다소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비밀에 있다. 왜 그가 불가능한 사건을 가능하게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꽤 두꺼운 양의 책장을 넘긴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만하다. 과연 지금까지 이런 주인공이 있었던가! 그를 알게 됨으로써,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또 하나 대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