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단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까다롭고, 그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알리바이의 틈을 분석하고 기억해 두는 것이 솔직히 버겁다. 그래서 최근 유행하는 추리 소설들이 갖추고 있는 - 그래서 위대하다고들 평가받는 - 수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반전의 반전 등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추리 소설에 대한 얄팍한 선입견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문학에 대한 편식이 싫었고, 무엇보다 "어떤 것을 위해, 혹은 얻기 위해 읽는다" 라는 다소 팍팍한 슬로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왜 꼭 지식적인 것을 얻어야만 하는가! 완전 반대다. 하지만 내가 그런 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물론 그럴 정도로 추리소설 분야를 비하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다만 이 곳은 내 취향이 아닌 서적에 대한 첫 걸음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로 열어두고 싶었다는 것을 밝혀두는 자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각설하고,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치고 재미없는 작품은 없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일본에서도 이미 인정받은 작가에다가, 영화사에서는 재미없는 원작으로는 절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용의자 X의 헌신 > 이나 <백야행> 등은 영화화됐고, <형사 갈릴레오> 였던가, -제목이 가물거리지만 - 하이튼 형사물 또한 일본드라마로 제작된바있다. (재미있게 봐놓고 또 제목이 헷갈린다. 아아, 나의 처량한 기억력이여! )

 

또한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의 소설이기에 사건에 대한 이미지 분석이 조금 더 편했고 더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장 자체가 꽤나 섬세해서 심리묘사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책을 읽는게 어렵지 않았다.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구조 - 아아, 나는 아마도 단순무식한 것이 틀림없다. 흑흑. ㅠㅠ 무언가 기억해두고 꿰뚫고 있는 지구력을 가지고 책을 읽기에는 토막 독서가 너무 많을지도. - 가 조금 무서운 나로서는 ,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로 시작아닌 시작을 하는 것이 적당했다" 고 여겨졌다. 그리고 내 개인적은 느낌으로는 이 정도면 얘기가 어렵지 않게 전개되었다고 본다. 오히려 추리 소설치고는 간단하다고들 평가하지 않을까? 미로처럼 복잡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뚫고 또 뚫고 나가는 치밀한 구성이라기보다는 어느정도는 짐작이 갔기에 "추리소설 입문서"로는 딱- 적당했다고 본다.

 

거기다 누구나 한번은 겪었던 학창시절에 대한 친근한 묘사도 책의 몰입에 한 몫 했다. 번역자의 후기에서도 그랬듯, "30대 나이에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어려움" 이고스란히 느껴진다. 오죽하면 작가 스스로가 "이 소설은 특히 집필이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가후기를 써보고 싶었다" 라고 밝힐까. 그만큼 소설에는 작가의 고충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것 같다. 극단적이긴 해도, 어쩌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입증하고 싶었던 진심이 10대의 누군가에게는 살인보다 절실했을 시기였을테니까.

 

책을 다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언젠가 프로파일링에 푹 빠져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평소 좋아하던 심리학과 겻들여서 제법 쫑긋쫑긋해지던 그 때의 감각들이 되살아 나고 있는 느낌이다. 자, 나는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에 첫발을 내딛였다. 다행히 읽을 작품이 많은 그의 작품 세계에 풍덩, 하고 빠질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왠지 모든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라는 각오가 생긴다. 내가 무슨 "모든 걸 다 밝혀내겠어, 작가가 파놓은 함정에 결코 빠져들지 않을테다!" 라는 마음이 되어 주먹이라도 불끈 져보이는 것 같다.  하하. 이것이 추리소설의 초심자의 마음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척 기대가 된다. 마치 군기가 잔뜩 든 신입 경찰관의 마음이랄까...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