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걷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떠남의 과제다. 문턱을 넘고 여정에서 돌아와 비로소 삶으로 떠나는 과정이다. 때때로 시간은 조바심 내며 붉은 낯빛으로 나를 다그쳤다. ‘더 이상 꿈으로 남아선 안 된다’며 부추긴다. 여행은 삶과 닮았다. 어찌 보면 가장 궁극적 행함으로 얻어지는 인생의 필수과목인 셈이다. p.5

 

어느 순간부터 그토록 좋았던 여행이 싫어지게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온갖 변명을 대며, 내 패턴 밖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미련할 정도로 돌아다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어느 날부터 180° 달라진 것에 이해가 안가면서도 수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삶에 지쳐가고 있던 나의 문제를 그녀는 말해준다. 결국 떠남의 문제라고.

그녀가 떠난 여행은 순례길을 향한 순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찾아가는 곳은 종교적 성찰의 순례의 목적지로 뽑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다양한 문화 역사가 담겨져 있는 만큼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 길에서 나는 그녀의 인생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길을 통해서 잃었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그녀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상실의 두려움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밤을 뒤로 하고 딸랑 170만원 들고 떠나온 길. 처음엔 이러한 나의 여정이 안쓰러웠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 참 많은 것을 의지하고 타협하며 살았던 지난날이 스친다. …성찰도 없고 궁극의 실천도 없이 환경에 지배받고 살아 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잔고가 내 삶의 모든 가치인 양 두려움에 떨었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증오하며 쓸모없는 기운을 낭비하고 있었다. 점점 나를 탓하고 다그치고 몸과 마음을 그르치며 편협해져 갔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무심히 떠나온 길에서 차츰 통증이 완화되어 갔다. 상실과 두려움으로 평생 싸울 수 없지 않은가.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또 하나의 배움으로 치유 받고 있는 것이다. p.215~216

 

부엔 카미노Buen Camino-행운의 길이 되길

 

그녀의 여행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은 조짐을 보여준다. 그녀가 도착한 파리에서 철도 파업으로 인해 그녀의 계획 또한 파산된 것이다. 이 밖에도 그녀에게 여행은 씻는 문제서부터 잠자는 문제들, 순례길에서 쓰러지기도 하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마저도 그녀에겐 배움이고 치유로 변화되었다. 또한 여행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들도 자신을 찾는데 열쇠와 같은 존재였다. 이정표와 화살표를 따르며 한발 한발 디딛 때마다 변화돼 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카미노 길의 수많은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카미노를 걸어본 사람들은 삶에도 이런 친절한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제 나름의 이정표를 만들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모든 마음을 이겨내며 나아가자! 새롭게 새겨진 믿음의 이정표를 따라 멈추지 말자!’하며…. p.294

 

마을과 마을을 지날 때마다 그녀가 처음 지고 갔던 불안과 걱정, 고민들과 아픔들을 하나하나씩 버려지는 것만 같았다. 몸은 더욱 더 지쳐가지만 그러한 자신의 한계 속에서 자신은 더욱 더 선명해 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 길을 같이 걷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길은 무엇이었으며, 우린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그것은 모두 각자의 몫이고 또 나머지였다. 길은 하나였지만 우리는 서로 제각가의 길을 따라 걸어왔다. 그렇게 제 나름의 격정을 대성당을 바라보며 쏟아내고 있었다. p.354

 

길에선 나를 채워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권태로움과 허전함으로 나에 대한 성찰과 물음으로 채워간다. 나 또한 그녀가 남긴 발자국을 이어 나를 찾는 순례의 길을 걷고 싶다.

 

내가 만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길을 걸으며 나는 두렵고 위태로웠다. 그렇게 차오르지 못한 허전함 속에 무던히 꺾이지 않는 신념의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된 내 안으로의 여행에서 묵묵히 견디며 걷는 영혼의 순례자를 만났다. 더디게 참고, 끝없이 응원하고 위로하던 내 영혼의 순례자. p.382

 

그녀의 장기간 여정이 끝나고 그녀에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본 만큼 앞으로의 그녀의 인생은 다시 자신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말해주고 싶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행운의 길이 되길.” 내가 가는 길 또한 행운의 길이 될 수 있길.

 

존재의 가치는 성장의 0발걸음에 있었다. 내게 책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그 길을 스케치북에 채우고 읽으며 많이 울고, 웃었다. 나는 꼬박 다시 그 길을 살았다. 조금 더 삶에 솔직해지고 싶었고. 세상은 성공과 대박의 결과가 아니라,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욕망보다 그 과정과 나름의 경험치를 만들고 익히며 사는 것이라 믿는다. p.391~392

 

김수연

 

저자 김수연은 서울여대 의류학과 졸업. 그림이 좋았지만 열심히 그리지 못했다. 허전한 비정규의 넋두리가 한없이 길어진 인생 반나절을 지나며, 자웅동체의 비정상적 인식의 잔뿌리만 웃자랐다. 성찰 없는 삶의 어느 날, 때늦은 시련에 무섭고 아파하다 사소한 밥벌이를 뒤로하고 길로 나섰다. 더 이상 째째하게 꼼수나 부리고 살 수 없어 나선 길. 세상 길에서 만나는 자신과의 불편한 진실들 속에 마음 길의 도로시가 되어보기로 한다. 조금 더디고 늦었어도 진실된 시선으로 세상을 습작하며 오늘도 삶으로 한 걸음 걷고 있다. 세 번의 카미노를 걸었다. 2010. 4-CAMINO FRANCES-MUXIA(920KM) 2011. 5-VIA DE LA PLATA(350KM) 2011. 7-CAMINO FRANCES(277KM)

 

오타 : p.309 스러지지 말아야 -> 쓰러지지 말아야

 

 

마음길을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