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얼굴을 가진 그녀

 

세상을 살아가면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어떤 사람 때문에 변화되는,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이 사람 사는 이유이며, 우리의 삶인 것이다. 이러한 삶이 한 장 한 장 자신의 회고록으로 쌓이면서 자신이란 존재를 만들어 간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신의 삶을 외부 밖으로 내보이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자신의 추억과 아픔들을 남들에게 보여준 다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을 다시 꺼내야한다는 고통.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평가될 수 있는 위험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을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당당하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바로 곽정은 기자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그녀가3,650일간 만나고 헤어진 1,000여 명의 사람들의 회고록을 풀어낸다. 그런 당당하게 자신을 보여준 모습이 나에겐 무척이나 멋져보였다.

사회에 나가서 생활하다보면 나의 삶에 타인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특히나 직업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그녀는 보다 다양한 타인의 삶을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자는 수많은 얼굴들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마다 변화되는 저자를 통해 나는 그녀에게 감히 ‘천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곧 그녀 자신이고, 그녀의 인생이다.

 

꼭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기자가 됐다. 원 없이 글을 쓸 수 있었고, 손가락이 아파올 만큼의 원고량을 감당해야 하는 패션지의 피처 기자. 글을 쓰고 싶은 만큼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몰라 한동안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다행이 시간이 약이 되어주었다. 글만 좋아하던 내가 비로소 사람을 좋아하게 됐으니까. 바보 같은 상태로 다치고 깨지고 감동 받고 사랑하고, 그러다 이제 겨우 글도 사람도 딱 같은 함량으로 좋아하게 된 나의 기록을 담아보고 싶었다. … 탈고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하고 쏟아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쏟아진 눈물만큼 나는 치유 받았고, 내 안의 무엇인가가 조금 나아진 기분도 든다. 당신도 나처럼, 이 채을 통해 치유 받고, 나아졌으면 좋겠다. 나의 서른네 살이, 이렇게 간다. p.5 <prologue>

 

천여 명의 사람들

 

에세이의 특징은 바로 자신의 감정을 몰입해서 내 삶처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입장에서 쓰여 진 이 책이 나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솔직한 그녀의 남자에 대한 얘기에 다양한 생각과 입장들을 볼 수 있었다.

 

여자를 온전히 사랑하거나 배려할 의사가 없는 차가운 영혼의 소유자들, 조금 더 나쁜 경우에는 여자를 이요하고 언제든 떠나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 그런 남자들을 나쁜 남자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남자들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여자의 측은지심과 모성본능을 자극한다는 거다. 조금은 까칠하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남자의 외모가 은근히 섹시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그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그에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속 기제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p.23

 

또한 이 책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에 대해 그녀가 지어주는 별명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매일 밤 자신의 이야기를 고해성사하듯 들려주던 남자를 ‘남자 셰에라자드’로,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안 되냐며 당당하게 얘기했던 그녀를 ‘와이낫’으로, 섹스할 때 어마어마하게 분비되는 호르몬 도파민을 가진 남자를 ‘도파민 러버’, 늘 자신의 잘난 맛으로 산 그녀를 ‘너 잘난’, 후배의 어려움에 거침없이 도움을 준 선배를 ‘김다르크’로 다양한 별명에 걸맞는 상황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때로는 화가 나는 분노를 주고, 때로는 가슴 아픈 슬픔을 공유해준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들과 경험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에게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약이 되어주는 것 같다. 당당한 그녀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며, 이 책을 보는 우리들의 삶도 계속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또 새로운 인연과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것은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그것을 인정해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잃지 말자는 흔들리지 말자는 조언 또한 담겨 있으리라.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삶에 대해서 ‘삶이 너무 재밌어서 죽기 아까울 정도’의 인생을 살길 나는 원한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난 지금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금 나는 200%의 나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토록 비현실적인 주문을 외우면서 버틸 만큼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거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수시로 각인시켜주었죠.” p.85

 

나의 진심이 너의 진심이 되고, 너의 진심이 그 어느 누구도 해하지 않을 때 우린 비로소 그제서야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진심, 이미 퇴색되어버린 말 앞에서 나는 애써 희망을 그려보고 싶다. p.123

 

나는 내가 지금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되기를,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순간이 좀 더 길어질 수 있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꿋꿋이 버틸 수 있어야 할 거다. 나의 존엄을 잘 지켜내야 할 거다. p.189

 

곽정은

저자 : 곽정은

저자 곽정은은 1978년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2001년부터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활동해왔다. 『휘가로』, 『싱글즈』를 거쳐 현재는 『코스모폴리탄』의 피처 디렉터로 연애, 커리어, 인물, 심리, 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2030 여성을 위한 기사를 쓰고 있다. 솔직하고 도발적인 연애론을 담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는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연애하듯 일하고 카리스마 있게 사랑하라』(공저)를 통해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기 위한 팁을 전한 바 있다.

 

내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