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아싸한 밤공기가 사무실 혼탁한 공기와 모니터에서 만들어내는 강렬한 전자색과 보이지 않는 전자파로 반쯤 마비된 정신을 번뜩 깨워주네요.

더욱 짙어져가는 숨소리가 날로 추워져가는 한반도의 기온을 대변해주고 있으며 더욱 움츠려드는 사지는 점점 새롭게 생긴 바깥 테두리의 나이테를 더욱 짙게 만들어가고 있네요.

평소 내 곁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자동차, 건물, 별들 또는 내 몸 속의 작은 변화들이 그저 자신의 운명처럼 제 갈길을 가고 있을 때,  어느날 문득 그들이 자신의 정기 운행을 멈추고 가슴을 보이며 내게 다가올 때 그들은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장미처럼 그날 밤 내 일기장 여백에 자리를 잡고 있죠.

수필이란 항상 등을 보던 그들의 가슴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담아두는 글이 아닌가 싶어요.

하루 24시간 누구나 공평하게 갖는 시간들, 모든이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사물들의 겉모습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흰 종이 여백을 가득 메우는 이야기로 바뀌게 되는건 만유인력의 물리적 끌림이든 전생의 끌림이든 누군가로부터의 심부름을 통한 끌림이든 서로에게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면서 시작되었을 거예요. 그러한 끌림을 통해 적혀진 글은 두꺼운 지식 배경을 갖지 않고도 모름의 부끄럼없이도 편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에세이스트' 3번째 격월호가 손에 도착했어요. 첫번째 만남때는 김지하 작가 글이 참으로 불편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번 김지하와의 산중방담에서 만난 김지하님의 이야기는 그전과 다른 따스한 끌림이 있어서 좋았어요. 우리 나라 말에 '정'이란 단어가 참으로 좋은데 미운정, 고운정.. 미워도 정, 고와도 정. 모든 것을 다 안을 수 있는 단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의 마음됨됨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한 정이 점점 에세이스트에 생기고 있어요. 수필이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글들이어서 그 정의 깊이와 넓이가 산술적인 더하기나 곱이 아닌 지수로서 제곱, 세제곱과 같이 커져가는 느낌이예요.

이번호에도 더욱 제 가슴에 파고든 글이 있었는데 윤명희님의 '촉'이란 글이어었어요. 예전 완고한 아버님을 두셨던 분들이라면 공감이 더 잘되리라 생각될거예요.

'...차라리 입을 다무니 열을 내서 이어가는 말 속에서 그의 화살촉이 보인다. 바늘 끝 같이 보이던 것이 두루뭉술하게 방앗공이만큼 크게 보이자 그 속에 휘지 않으려 용쓰는 그가 있다' p182

아버지의 완고함. 그 물러섬없는 앞만 향해 나아가는 성질을 '촉'이라 일컬으며 작가의 심정을 표현한 글이 어릴적 그러한 경험이 있던 저에게도 그 당시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러면서 이내 그 완고함으로 자신을 가둬야만 했던 아버지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에세이스트에 실린 많은 글들이 겨울밤 아싸한 공기처럼 차가움이 아닌 따스함으로 바쁜 현대생활에 마비된 정신을 깨워줄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