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소설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영화와의 관련성때문이겠으나, 나에게는 모처럼 만나는 색다른 독서의 기회였다. 작가가 '드레퓌스 사건'으로 유명한 에밀 졸라가 아닌가 말이다. 권력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소신있게 밝힌 그의 행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곤 했었기에 관심이 가는 소설이었다. 또한, 그동안의 편독으로 낱낱이 새로운 책들 속에서도 어딘지 지리하던 일상이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잠시 잊혀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특별히 재미나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읽는 도중 던져버리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었을 정도로 지루하고 뻔한 부분도 있었다. 계속되는 심리 묘사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고, 로랑과 테레즈가 구분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본능에 좌우되는 연약하고 가련한 인간의 노골적인 드러냄에서 이 소설은 그 특별함을 보여준다.

 

병약하고 과잉보호를 받는 사촌 카미유와 미적지근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던 테레즈에게 몸집이 크고 동물적인 로랑은 새로운 세계였다. 유약하고 미끈거리는 남편과 다정다감하고 착하기만한 시어머니는 테레즈의 아프리카적인 야성을 알지 못했다. 어두침침한 통로의 가게에서 신경질적인 여직공들에게 바늘이나 보닛 나부랭이를 팔면서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살아가던 테레즈는 로랑과의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은 카미유를 없애는데까지 나아갔고, 그 이후 그들은 계획대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동물인지 이 소설에서는 그대로 드러난다. 테레즈와 로랑은 끝없는 죄책감과 드려움에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서로를 죽여간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하여 애초에 그들이 왜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생각은 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발표 당시 많은 지탄을 받고 작가가 그것에 대해 해명하는 글까지 쓰게 될 정도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 소설은 지금에 와서는 그 소재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이 소설이 내게 가치를 갖는 것은 죄책감과 미움으로 망가져가는 남녀의 모습에 대한 처절하고 노골적인 묘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다가와서이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후회하며 사는 게 인생일 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어느 누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