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단순한 여행에세이겠지, 싶었다.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라는 제목은 왠지 그 느낌에서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저자 개인의 느낌을 담은 여행 에세이라는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러스트를 공부한 저자가 어느날 갑자기, 라는 말처럼 그렇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생활과 그녀의 일러스트가 담겨있으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나의 예상을 뒤엎은 그녀의 소풍 이야기, 영국의 시골농장에서 보낸 천국 같은 날들에 대한 기록은 내게도 소풍같은 하루를 선물해주고 있다.

영국에서 패션공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지내고 있을 즈음 친구를 통해 시골의 어느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는 그 이후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로 그녀의 소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시골 농장에서의 사계절을 담은 것이다. 물론 그 시골농장에서의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함이 아니다. 그녀의 시골농장 생활은 겨울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것 또한 왠지 온갖 생명체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봄,을 기다리며 그 준비를 하는 첫 시작은 겨울부터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골농장에서의 체험은 너무도 특별한 것이지만 전혀 특별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 자잘하고 세세한 일상의 모습에서 삶의 진리를 통찰해내고 진심을 담아 감동하게 해 주는 그녀 자신의 독백이 좋았다.

특별하지도 않은 어느 날 사소하기 짝이 없는 토스트 한 장에도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시골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숲속에서 어느새 하나둘 별을 보기 시작하고 달을 보기 시작하고 달의 크기에 따라 밤의 빛도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는 놀랍도록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고, 항상 그곳에 있었으나 어두워지기 전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을 느끼는 말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마음 설레이는 기쁨을 덩달아 느낄 수 있게 된다.

영국의 시골농장에서 보낸 천국같은 날들,이라고 해서 그녀의 일상이 편안하고 우아한 생활이었을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내가 마당의 작은 텃밭하나 제대로 일궈내지 못해 온갖 잡초를 무성하게 키워내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농부로서 생활하는 농장에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 땀의 나날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농장주 투스의 농작물 재배방법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녀는 농작물에 일부러 물을 뿌리지는 않는다는 말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순리를 생각하게 되고, 한 땅에서 해마다 계속 같은 작물을 키우지 않는다는 말에서 인간의 먹거리와 이익만을 위해 땅을 혹사시키는 것은 땅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자라나는 생명체 역시 시들어가게 만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시골농장의 나날들이다.

˝평생 조약돌처럼 반듯 잘 생긴 감자를 먹어보지 못한 농부. 그 농부의 삶처럼 울퉁불퉁 갈라지고 패인 감자를 씻고 자르면서, 나에게 로맨틱한 일탈이었던 농장의 삶이 그녀에게는 생존을 위한 삶의 터전인 것을 순간적으로 매우 절실하게 느꼈다. 그순간, 그토록 잊고 싶던 내 삶의 버거움들이 그 농장 한가운데 휴양하듯 지내던 내 눈앞에 도시의 마천루처럼 솟아올랐다.
그 고상했던 맛은 그녀가 수고와 땀으로 길러낸 삶. 그중에서 못나고 상처 난 것들도 버리지 않고 다 씻고 다듬어 먹을 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못 먹게 생겼어도 맛은 같았을 삶의 또 다른 면들. 나는 혹시 모나고 패인 부분은 돌려 받듯한 모습만 보고 싶어하진 않았나, 혹은 평생 달처럼 한 면만 보고 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