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 나의 현재 내 주위의 미묘한 상황들이 얽혀있는 관계를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내성적이긴 하지만 공동체와 상관없이 혼자 겉도는 성격은 아니어서 학창 시절에는 주위에 꽤나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함께 어울려 몰려다니기도 했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건 여전했지만 언젠가부터 직장내에서 슬그머니 따돌려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오로지 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유도하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 함께 어울리는 짓 따위는 내가 싫어서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이라도 좀 해볼까 싶은 찰나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도, 표지도, 비밀정보요원이라는 것도 다 별로 맘에 안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뜻밖에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내용은 언젠가 우연히 봤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마피아로 위장해 들어간 FBI요원과 마피아 조직원과의 긴밀한 우정과 신뢰가 인상깊은 영화였는데, 사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결국 거짓 위장이 밝혀져 그를 조직에 데려온 알파치노는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뢰를 버리지 않아서 더 강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신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10년간 독일 비밀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떻게 범죄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범죄자를 자신의 정보원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 물론 레오 마르틴이라는 이름은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용한 가명인 레오는 ˝사람을 내 편으로 묶는 기술은 예술의 경지이다˝라는 것을 토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의 바탕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강한 신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 방영하고 있는 ｀황금의 제국｀이라는 드라마에서 정치인을 죽인 고수는 자신을 대신해 살인죄로 장신영이 잡혀들어가지만,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첫번째 시작은 자신 스스로 무죄임을 확신하며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첫번째는 확신과 신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여전히 내 주위 사람들이 무서울뿐이다. 책을 읽고 나니 더욱더 주위 사람들의 거짓이 선명하게 보여버리고 있어 더 무섭다. 이 책은 레오가 활동하면서 실제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론체계를 세우며 정리해나가는 글이라 그리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수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이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물론 레오 마르틴이 이 책을 쓴 이유 역시 꼭 누군가를 자신의 정보원처럼 목적의식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관계맺음｀에 대한 깊이있는 기술,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것이다. ˝모든 만남 뒤에는 고도의 전략과 연출이 있다. 단지 당신만 모를뿐˝이라는 말이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하루의 반나절을 보내는 직장 동료중에서도 그런 전략과 연출을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전략은 이미 내게 관통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무실에서는 그가 행하는 고도의 전략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교묘하게 숨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종하며 그 목적을 위해 선심을 쓰며 정보를 얻어내는 것까지는 모른척해줄수 있는데, 최근에 그의 행적은 참고 넘기기 힘들어지고 있다. 한 직원의 앞길을 막아놓고는 그러한 일을 한 것이 다른 직원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미움받고 있는 직원을 자신은 모르는 척 같이 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길을 막은 직원에게도 친한척 다가서는 모습을 보니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그는 자신이 한 짓을 숨기고 그들앞에서 과연 어떤 말을 늘어놓고 있을까? 나는 그 직원이 진심을 갖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정도일꺼라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레오 마르틴은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하며 사소한 일이라도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세세한 정보를 줄 필요는 없으며, 특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하는 정보요원인 경우 특별한 일들이 아니라 평범하게 많은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생활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좋으며 그러한 것들은 만들어낸 이야기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모든 말에 동감할수밖에 없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궁금해지고 있다.
나는 이미 상대방이 거짓임을 알고 있지만, 제3자는 그가 진실이 아님을 모르고 있는 경우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까?
상대방이 나를 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모른척해줄수도 있지만, 자꾸만 범위가 좁혀지고 있는 그의 거짓과 기만을 계속 모른척하기에는 내 안에 남아있는 일말의 양심과 정의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것을 눌러 참기가 버거워지고 있다.
레오 마르틴이 다음에 또 다른 책을 낸다면 어떤 책이 나올까 궁금해지는 건 신뢰를 구축하고 설득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넘어선 다른 관계맺음에 대한 것이 아닐까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