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래피티는 벽의 낙서에서 서서히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래피티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간혹 해외 여행을 갔을 때 버스를 타고 지나치면서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말 그대로 낙서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행기를 읽으며 뱅크시,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07년쯤인가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뱅크시의 그래피티는 문화적 충격이라 할 수 있었고, 그의 그래피티를 찾아 나선 여행가의 글 역시 꽤나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그때 책을 통해 잠시 봤었던 그래피티의 주제가 동성애, 외도, 영국내에서도 문제시 되었던 경관의 대마초 흡연 모습 등의 그림들이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뱅크시에 대해 알게 된 후 잠시 잊고 지내다가 뱅크시 월 앤 피스라는 책이 번역출판되었고 알음알음으로 뱅크시가 제작한 다큐영화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작품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인터넷으로 더 많은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 뱅크시를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한동안 그 책을 마구 선물하느라 꽤 많은 책값이 들기도 했지만, 이 엄청난 그래피티를 그리는 사람을 나 혼자만 알고 지내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직 중학생인 조카에게 뱅크시의 책을 보여주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서울G20정상회의즈음에 뱅크시의 쥐그림이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그냥 한번 읽어보라고 선물을 했었다. 책을 주문하고 나는 밖에서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조카가 전화를 해서는 책선물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한 기억이 난다. 한시간 안에 집으로 들어갈텐데 그때 말해도 되는걸 전화까지 했냐고 한마디 했더니, 책을 받고서 바로 읽기 시작해 방금 다 읽었다면서 뱅크시는 진짜 이 시대의 천재라며 나도 미처 살펴보지 않았던 뱅크시의 이력을 줄줄 읊어대기 시작해서, 나보다 훨씬 더 뱅크시에 열광하는 팬의 탄생이다.

뱅크시가 직접 쓴 책과 그의 작품들을 많이 봤기 때문인지 이 책은 작품을 본다는데 의의를 두기보다는 그의 작품을 찾아 가는 여정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 책에는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런던 가이드 투어｀라고 되어있는데다가 저자 자신이 뱅크시의 작품을 찾아 나선 여정에 대한 글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최근의 작품들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은 2011년에 출판된 것이고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도 대부분 도난당하거나 지워져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뱅크시의 작품 사진은 뱅크시 자신의 책에 실려있는 사진이 더 잘 나와있는데다가 이 책은 런던지역을 한정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려넣은 작품 사진은 없다는 것도 많이 아쉽다.

뱅크시를 알고 난 후, 언젠가 꼭 런던에 가서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보러 다니겠다는 소망을 몇년째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뱅크시의 그래피티에 대해서만 알게 되니, 누구의 소유도 아닌 거리의 그림을 벽을 뜯어내면서까지 훔쳐 개인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더욱 더 얄밉게만 보인다.
자꾸만 아쉬움을 늘어놔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워지는데, 이 책은 이미 사라져버린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세월의 흐름에 지워져가는 과정, 하나의 작품이 생겨나고 거리의 작품답게 덧칠해지는 것으로 지워졌다가 다시 생겨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과정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 거리의 그래피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뱅크시 그래피티 투어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싶어지면서 이 책의 의미를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