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긴 세월 동안 남(南)프랑스의 여름빛이 숙성시킨 사랑의 묘약 이야기다.
그리고 여행길의 풍경 속에 지워지지 않는 지문을 남긴 문학의 이야기다.˝

쉽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이 책에는 자꾸 눈길이 가고, 그만큼 마음이 가는 것과는 다르게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어쩌면 내가 직접 느껴보지 못한 남프랑스의 여름빛을 여름의 묘약을 통해 조금씩 올 여름의 햇살에 스며들게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40여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은 가뭄과 폭염의 더위 속에서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햇살의 느낌이 마음안으로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허황된 사치, 쓸데없는 허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내 마음은 그랬다.

이 책은 여행산문집이 아니라 문학산문집이라고 해야 옳다. 알베르 까뮈, 장 그르니에, 마르셀 프루스트, 장 지아노... 프랑스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속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 찬찬히 둘러보고 그 느낌을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새삼 문학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만 낯익을뿐 그들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어릴적에 이해되지 않는다며 읽다가 팽개쳐 둔 이후로 다시 집어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그들을 잊고 살아간다고 해서 내 마음이 허전하다거나 아쉬움조차 없었기에 그 후로도 눈길을 한번 주게 되다가도 이내 쉽고 가벼운 곳으로 나의 마음은 더 가벼이 움직여버리게 되었으니.
그런데 여름의 묘약을 읽으며 프로방스에 대한 여행의 꿈만큼이나 강렬하게 문학세계로의 여행도 열망하게 되었다. ˝문학은 삶에 형태와 윤곽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를 참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38)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 것일까?˝

잠시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카뮈의 사막을 이야기하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야기한다. 곳곳에 보수공사 현장에 붙어있는 광고판과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나는 도무지 좇아갈 수 없는 여행길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그 뒤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여름의 끝무렵에 와 있게 되었다.
장 지아노의 마노스크 고원의 이야기에서 내 고향 제주의 오름을 연상하게 되고, 4.3의 아픈 역사를 자연의 아름다움과 맞물려 영상으로 표현한 영화 지슬을 떠올리면서 나는 프로방스에 더한 친근감이 생겨버렸다. 그리하여 언젠가 여름의 묘약을 챙겨들고 프로방스의 여름을 느끼러 가고싶은 설레임을 간직하게 된다.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오른발이 아직 뒤에 있을 때 그 중심에 머무는 몸의 짧은 순간, 전신의 모공을 열어 빨아들이는 세상의 빛과 냄새와 소리와 촉감, 그것이 여행˝(165)임을 나 역시 온몸으로 느끼면서 가게 되리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