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누군가 내게 사과를 건네주었다. 사과 몇 알이 담긴 비닐 봉투를 선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었지만 봉투 틈새로 흘러나오는 사과의 향은 거절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을 품고 있었다. 진하고 달콤한 향 만큼이나 사과는 빨갛게 탐스러웠지만 실망스럽게도 맛은 그 겉모습을 따라가지 못했다.
우연찮게도 사과를 선물 받은 그 때, 내 가방속에는 이 책 '사과의 맛'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달콤한 향을 품어내는 사과 한 알을 옆에 두고 또 다른 사과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이 사과의 맛은 '동화보다 발칙하고, 영화보다 기발한 이야기들의 향연'이라는 겉모습보다 더 향긋한 맛이 나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아무런 느낌없이 계모왕비와 백설공주만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책을 읽던 나는 공주도 아니면서 사과의 독에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해버렸다...

"'사과의 맛은 사과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먹는 사람 입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맛은 사과와 먹는 사람 간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라고 보르헤스가 인용했던 버클리 주교의 말을 종종 생각합니다. 기적이란 건 이 아홉 편의 이야기에 존재하는 것도, 나와 당신에게 각각 존재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책갈피를 뒤적여 기적을 만들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딱 그런 느낌이었다. 사과의 맛은. 사과와 먹는 사람 간의 접촉.
사과의 맛을 보는 그 경계에서 나는 찔린 손가락에서 빨간 피를 뚝뚝 흘리며 어여쁜 백설공주를 낳고 싶어한 왕비가 아니라 자기가 찌른 바늘에 피를 흘려 빈혈로 쓰러져버리는 바보 광대의 역할을 느껴버리고 있다.
내 세상이 그리 넓지 못하여, 환상적이고 기묘한 동화같은 나라의 인간들의 삶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 못했지만 작가의 이야기들이 그저 기발한 이야기만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는있다.

오현종의 사과의 맛은 아홉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의 모티브는 우리가 어릴적부터 흔히 접하던 동화 이야기속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것을 단순히 동화의 외전같은 느낌으로 사과의 맛을 보려한다면 당혹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화 이야기가 원래 잔혹한 거였어, 라는 말로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동화와 환상과 설화가 교묘하게 섞이면서 처절하고 적나라하게 우리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단편들은 하나의 표현으로 그 느낌을 말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녀가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사과의 맛'인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