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의 일이다. 오랫만에 가족이 다 함께 휴가를 받아 왁자지껄하게 집에 모여 복작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평소 부모님과 조용히 지내던 내게 온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한바탕 이벤트와도 같은 날이지만 길어야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끝나는 일이니 참고 지낼만 한 일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모두 모여있을 때 조용히 있고 싶은 기분이 들면 괜히 안절부절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아 꾹꾹 눌러참고 있다가 도저히 못견딜정도가 되면 조용히 혼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책을 읽곤 했다. 그때 한번은 그 문 너머로 ｀저 성격 이상한 놈｀이라고 툭 던지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와 조금은 상처를 받았었다. 다 커서 그런 말쯤에는 상처를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물론 단지 그 한마디에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그 말에 동의하는 듯한 태도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내 어린 조카 중 하나가 나와 비슷한 성향이다. 그런데 내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은 조카애가 그렇게 혼자 동떨어져 나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애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배려의 말이 오간다는 것이었다.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기질과 내향성을 갖고 있는 것은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존중되어야 할 것인데 왜 나는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성향이 무시되어야 하는 것일까,가 큰 불만이었던 것이다.
어른이라면 좀 더 참고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꾹 눌러참기만 한다면 본인이 받는 그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하겠는가.

이 책 ｀아이와의 기싸움｀은 여러 성향과 기질의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며 갈등과 싸움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충돌하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명과 예가 담겨있는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실천지침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여러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각 장의 끝머리에는 여러상황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코칭팁이 잘 정리되어 있어 책의 내용을 모두 잊고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아무 생각이 안떠오를때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책의 코칭팁을 재빨리 훑어보기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랑과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아이와의 기싸움은 또한 나 자신의 기질과 아이들의 기질만을 안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성향과 기질, 성격이 다르기때문에 그러한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를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제시되어 있는 구체적인 예와 설명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문득 똑같은 상황에 같은 아이가 상반되는 반응을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기질과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주위의 환경과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일관되게만 반응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라는 걸 겨우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그 아이의 상태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스트레스와 위협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 특별하거나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으리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사랑과 노력이라거나 이해와 반응에 대한 한쪽의 이야기에 더 집중되었던 것이었음에 반해 ｀아이와의 기싸움｀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며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책을 처음 읽을때까지만 해도 옆에 두고 계속 참고하며 읽어야 할 책,이라는 평에 뭘 그렇게까지 하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정말 자주 들춰보며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온전히 내것으로 해야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이 책을 읽지 말고 친구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겠구나 싶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