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이라는 숫자는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 41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41은 역겨움에 속이 메스꺼울만큼 아프고 엄청나게 커다란 숫자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며칠 후 인터넷에는 41을 연상케 하는 1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열여섯명의 가해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은 피해자이면서도 끝내 이곳에서 살지 못해 어머니와 캐나다로 떠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있지만 자꾸 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다는 아내의 전화에 하루하루가 불안할수밖에 없다는 기사의 끝에는 피해자 아버지가 가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려 한다고 되어 있었다. 돈때문이 아니라 경미한 처벌에 분노할수밖에 없고 가해자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고 싶다는 보복의 감정을 호소했다...

사실 나는 소설 [41]을 읽고 이 끔찍한 사건을 더 끔찍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법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발속에 그 법을 무시하고 사적인 심판을 내리려는 시도는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없고 그저 복수의 감정에 대한 이유만을 내보이려고 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기만 할뿐이었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며 세상 사람들의 질타속에 숨어 살아야하는 현실, 가해자이면서도 철저히 신분보호가 이루어져 자신 스스로의 기억만 잊어버리면 아무일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마음껏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이 분노하게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피의 복수는 아닌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척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은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 용서와 교육을 통해 인간을 교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원래부터 고양된 영혼을 가진 극소수의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야. 비율을 말하자면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 대부분의 사람은 용서와 교육을 통해 교화되지 않아. 죄를 저질렀을 때 충분히 따끔하게 혼이 나야지, 이러면 안되는구나, 정신을 차리지. 너희들은 어떤 벌을 받았지? 학교 운동장에서 며칠 휴지나 줍고 말았지. 강간을 해도, 사람을 때려도, 휴지나 주우면 그만인 거야. 그게 선도인가? 그렇게 해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나? 인간을 예의 바르게 만드는 힘은 관용이 아니라 공포야. 죄의식 역시 충분한 벌을 받아야만 생기는 일종의 공포야. 함부로 행동하다간 혼난다는 공포. 너희들은 그 공포가 결여된 놈들이지. "(240)

오래도록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말이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물론 공포일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성찰일 것이다. 뼈속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관용이든 공포든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억압상황이 사라졌을 때 그들의 죄의식은 다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것은 그러한 부분이다. 피해자인 미나와 그 가족들에게 남아있는 피해의식과 복수심, 무기력함... 가해자들의 각기 다른 일상에서 보여주는 드러나는 겉모습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쩌면 그래서 "법이 놓친 악행을 범하는 이는 의인인가, 악인인가?"라는 물음은 진중하게 깊이 사색해야 하는 철학적인 물음이 아니라 복수심에 불탄 이들 앞에 툭 내던져지는 질문같은 느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