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생겼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서 간식이나 잔뜩 보내줄까... 하다가 평소 습관대로 책선물로 눈을 돌려 이것저것 뒤져보기 시작했다. 마침 요즘 눈에 띄는 만화책이 몇 권 있었는데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이나 만화책을 좀 더 살펴볼까 싶어 찾다가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맨발의 겐｀을 주문해버렸다. 내가 먼저 읽어보고 선물해줘도 좋겠지.. 라는 생각인 것이었다. 하아, 그런데 이 책 맨발의 겐, 한번 읽고 넘겨버리기에는 왠지 너무 무겁다.
사실 지금 나는 맨발의 겐을 2권까지밖에 못 읽었다. 내용을 봐서는 두세권이면 끝날 것 같았는데 꼼꼼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당시 상황에 대한 배경설명까지 자세히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적으로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것은 시대적인 배경뿐만이 아니라 주인공 겐이 겪었던 일들과 당시 일어났던 사실들에 대한 끔찍한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무실에서 택배 박스를 받은 날, 점심시간에 사무실이 비어있는 틈을 타 서둘러 점심을 먹고 와 책을 펴들었는데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밥을 먹은 후 식곤증을 달래가며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기에 딱 둘째권까지만 읽고 다시 꽁꽁 감싸둬버렸다. 지금도 만화처럼 묘사된 핵폭탄의 여파와 방사능의 효력이 어떤 것인지 끔찍하게 떠오른다.

맨발의 겐은 원폭을 실제로 체험한 필자가 자서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핵의 파괴력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알리면서 동시에 반전반핵 평화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패망해가는 일본에서 동네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면서까지 전쟁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집단 따돌림을 견뎌내지 못해 지원입대하는 형을 통해 전쟁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끝끝내 전쟁을 포기하지 않은 군부와 일부 세력에 의해 결국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은 항복을 하게 된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라는 추상적인 개념만 갖고 있던 내게 이 책에서 묘사되는 끔찍한 풍경들은 차마 두번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집이 무너져 내려 그 밑에 깔린 아버지와 누나,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는 가족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했던 주인공 겐의 모습은 그냥 만화책 주인공이 아니라 실존하고 있는, 그러한 공포와 비참함을 느껴야 했던 한 어린아이의 회상이라는 걸 떠올리면 너무나 끔찍해진다.

그러한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범인 일본에 대한 용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떠올릴수는 없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피해자,라는 말을 꺼낼수도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는 반전반핵과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대일본제국이라는 허울아래 전쟁에 미쳐가는 소시민들의 모습과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걸 영광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전쟁의 비인간성,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와 만행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