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탁상 달력을 얻기 위해 은행을 기웃거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이벤트 상품으로 주는 탁상달력을 찜해두기도 한다. 용도에 따라 사무실에서도 공적인 업무 일정표로 사용하는 달력과 개인일정과 기록을 위한 달력이 필요하고 집에서도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달력이 필요해 탁상달력 여러개를 구하러 다닐때는 귀한 듯 하다가도 막상 해를 넘기고 한달쯤 되어가면 마구 구해서 쌓아둔 달력 한두개는 쓸쓸히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용도에 따라, 사람에 따라 구하는 달력이 달라진다. 달력은 다 똑같은 날이 담겨있는데 뭐가 다르다고 저렇게 기를 쓰고 구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속된말로 물때가 적혀있는 달력을 필요로 하고, 성당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나는 교회전례가 적혀있는 교회전례력이 필요했고, 계절에 따른 절기가 필요한 어머니는 음력이 좀 더 크게 적혀있고 한번에 석달을 볼 수 있는 커다란 달력을 더 좋아하신 것 처럼 달력안에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달력의 역사는 문화의 역사이기도 하다"(171)라는데,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우리 선조들의 그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뿐 아니라 정치와 권력의 역사까지 다 아우러지는 것이 달력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인간, 문명, 시간의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아니, 이건 내 말이 아니다. 시간과 권력의 역사를 읽다보면 그 모든것이 연관되어 있고 그 모든것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게 된다.

 

나는 달력과 관련해서 언젠가부터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잠시 먼저 생각을 해 보자. 왜 한주일의 시작은 일요일인걸까. 천주교 신자인 내게 일요일이란 주일(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일이 그 한주간의 시작이라는 걸 받아들이지만 왜 우리의 모든 달력도 주일이 시작인 것일까,가 궁금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의문이 있을즈음 한두개정도 일주일의 시작을 월요일부터 표시했던 달력을 보기도 했었는데 솔직히 그 달력은 몇달 쓰다가 폐기해버렸다. 너무 오랜 세월 빨갛게 표시된 일요일을 시작으로 한 달력을 봐 왔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급할 때는 요일을 착각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서도 시간과 권력의 역사가 보이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도입과 흐름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물론 기대한것처럼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절기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었다면 한층 더 쉽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교회전례력에 익숙한 내게도 이 책의 내용은 그리 쉬운편이 아니었으니 역시 시간의 문화사라는 것은 자신이 속해있는 정치, 문화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쉬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무조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동방교회에서는 다른 날로 기록하고 있다던지, 이천년이 되면서 - 나 역시 후배와 내기까지 했던, 이천년은 이십세기인가 이십일세기인가에 대한 논란, 그레고리력이 보편화되기 시작하게 된 역사 이야기들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부활절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냥 몇월 며칠이 부활절이구나 라고만 생각하다가 태양의 주기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복잡한 계산법으로 정해지는 부활절을 알게 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의 주기가 다르게 느껴졌던 것처럼 이제 그냥 1년이 있고 51주가 있고 365일이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