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으며 잠시 책 제목을 잊어버렸다. 한참 글을 읽다보니 지금 우리 시대의 작가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사회에 대한 칼럼을 쓴 것인가 착각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건 극대화시켜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이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꽤 많았다는 내 느낌을 사실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는 그냥 생겨나지 않았다. 400년에 걸친 고된 노동과 피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이 땅을 창조했다. 우리들은 아메리카를 생산해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온갖 인종에 뿌리를 박고 온갖 피부 빛깔로 얼룩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인종상의 무정부 상태를 이루는 새로운 종족 아메리카인으로 태어났다.˝(113)

사실 예전에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은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아메리카에 대한 별관심이 없었지만 존 스타인벡이라는 이름때문에 이 책을 펼쳤다. 그래서 처음엔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닌 소설인 줄 알고 기대를 했는데 소설이 아니라서 솔직한 나의 첫느낌은 실망감이었다. 그런데 그런 실망감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금세 사라져버렸다. 글을 번역한 안정효의 해제는 존 스타인벡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 분노의 포도 외에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존 스타인벡의 삶과 문학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그래서인지 그가 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느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존 스타인벡의 이 글은 이제 반세기가 되어가는 과거에 쓰여진 글이지만,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에 대해 쓴 글이지만 왠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읽기에도, 우리나라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조금 아까 길거리에서 얘기를 나눈 사람이 흑인이었는지 백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북부이거나 남부이거나 간에 노예제도가 우리 사회에 남긴 충격을 완전히 이겨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170)라는 글에서는 과거의 노예제도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시대에 대한 비판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쓰여진 그의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인식할 수 있고 또한 그럼으로써 미래의 모습까지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그의 날카로운 문명비평서는 그렇게 바라보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님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광활하고 비옥하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들의 땅. 그것은 우리의 땅이고, 우리는 더도 덜도 아니고 그 땅처럼 살아갈 것이다...... 우리들은 때때로 실패했고, 길을 잘못들었고, 기운을 차리려고 멈추었고 배를 채웠으며 상처를 치유했지만 우리는 한번도, 단 한번도 뒷걸음질을 친 적은 없었다.(290-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