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라는 말을 처음 듣고 떠올린 것은 난생 처음으로 얼결에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들렸던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이었다. 아직 배낭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좋은 기회가 생겨 넷이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여행 마지막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반나절의 시간이 남아 함께 한 두명은 그냥 쉬다가 공항으로 가기로 하고 나와 언니는 한두시간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별다른 지식이 없어서 비너스나 나이키, 모나리자, 당시 드라마로 유명해진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등만 휘리릭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나오려는데 어느 커다란 그림 앞에서 한창 스케치에 열중하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 학생 뒤로 슬그머니 돌아 나오려고 보니 근처에 두어명의 학생이 더 그림앞에서 스케치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때 내게는 생소했던 박물관의 풍경이 그리 부러울수가 없었다.

나는 그림에 깊은 관심이 있거나 박학다식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 루브르 박물관 같은 곳에 가서 그림공부를 하는 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미술관에 놀러간다를 펴들어보니 괜히 그때 루브르를 처음 갔던 때처럼 마음이 마구 설레었다. 갤러리나 전시회같은 곳에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것이라고만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갤러리가 서울에 이렇게 많다니, 정말 언제 서울나들이를 가게 된다면 어디 갈만한 곳이 없나, 두리번 거리지말고 이곳저곳 구석구석 박혀있는 이 보물같은 곳을 찾아다니면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총 29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그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저자가 직접 찍은 아기자기한 사진들이 어우러져 부담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짤막한 미니 인터뷰 형식으로 저자의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과 갤러리 운영자의 전문적인 이야기도 담겨있어 미술관에 놀러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뿐인가. 중간중간 팁으로 미술관이 여전히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해 아주 소소한 것들을 세심히 알려주고 있다. 궁굼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물어보기는 힘든것들, 그러니까 미술관에 가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떠한 차림새가 좋은지, 갖춰야할 예의는 어떤 것이 있는지, 초보 관람자가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 어떤 것부터 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 팁이 본문 이상으로 아주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어 더욱 좋다.

그래도 혹시 미술관에 가도 쭈삣거리게 되는 내 모습이나 남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쳐다보는 그림을 보면서도 도통 뭐가뭔지 모르겠으면 그런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모든 그림을 이해하고 갤러리에 가는 것이 일상이라면 내가 그림평론가라는 전문가이지 일반 관람자이겠는가.
그러니 저자의 말을 믿고 이제부터 조금씩 미술관 나들이를 시작해보자.

"안심해도 좋다. 당신만 그런건 아니므로. 미술은 몰라도 좋다. 그냥 내가 느끼면 된다. 제아무리 피카소라 할지라도 내가 별로면 별로인 거지, 뭐. 미술관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마침 출출한 당신을 위해 주변의 숨은 먹거리는 서비스!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그대를 위한 즐길거리는 덤! 이제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은 툴틀 털어버리고 내 멋대로 놀러가보자. 포기하기에 미술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