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로 서울을 담고자 한 첫번째 이유는 서울을 '더 잘 알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스케치를 잘 하지 못하는 나같은 경우 우리 동네 여행, 아니 산책을 한다면서 똑딱이 사진기 하나 들고 탑동 바다를 지나 해안도로를 걸으며 집까지 돌아오는 길의 풍경을 담은적이 있다. 날마다는 아니지만 가끔씩 걸었던 일상의 그 길이 사진을 찍는 것 하나만으로도 달라보였는데 스케치로 서울을 담는다면 더 세세한 풍경과 느낌을 담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장희의 풍경화 함께 한 서울의 스케치 여행은 그러한 예상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밀한 그림과 빽빽하게 적혀있는 작은 글자들이 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했지만 곧바로 나는 책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서울의 스케치여행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명절 서울나들이를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경복궁을 갔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갔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세밀하게 설명이 되어있고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서울을 쉽게 가기 힘든 지방에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로 풍경을 담았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직접 한번 가서 보고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경복궁 근정전 마당에 박혀있는 마당쇠고리는 햇볕을 가리기 위한 천막을 묶기 위한 고리라고 하는데 그 위치를 살펴보니 세번째 품계까지 그늘의 혜택을 받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런 소소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나들이를 하지는 못한다. "물구나무 선 코모도 도마뱀이 찐 옥수수를 뜯어 먹으며 내 앞을 유유히 지나간들 진정 관심이 없으면 모르겠구나, 싶었다. 문화재라는 것을 이토록 좁은 곳에 잘도 숨겨놓았다니, 일종의 어떤 경외감? 우리나라의 문화재 은닉보존 기술은 단연 수준급"(184)이라는 저자의 경험섞인 이야기는 씁쓸한 동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날마다 출퇴근하며 걸어가는 이 동네에도 자세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 표지석들이 여러개있다. 언제한번 그 표지석들에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겠구나.
예전에 한 사학도가 쓴 '제주역사기행'이라는 책을 읽은 후 내가 사는 고향땅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역사와 의미를 알게 되고 평소 아무런 느낌없이 다니던 길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때 이땅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잘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의 시간을 그린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때 서울이 고향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구나 생각했던 마음이 또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의 서울의 모습으로는 조금 힘들지 모르겠지만.

"서울 성곽과 사대문, 사소문을 모두 복원하고, 그 안에는 기와의 물결이 출렁이게 만든다. 전주 한옥 마을을 거닐고, 오목대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리라.... 서울 성곽안은 파리성곽도시보다 더욱 확실한 역사도시가 될 것이다...."
서울스케치 여행노트를 접으며 저자는 상상 속의 서울을 그려본다. 만일 외국인에게 현재의 서울과 저자의 상상속의 서울 중 어느곳을 가고싶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상상 속의 서울을 찾을 것이다. 아니, 내게 묻는다고 해도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돌아가는 길을 만들고 조금의 불편함을 참아내는 다른 곳과 달리 서울은 재벌언론사의 힘에 밀려 문화재를 옮겨놓고 보호라는 명분하에 담장을 세워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막아내버린다. 이러한 현재의 서울이 아니라 마소를 피해 편한 통행을 하게 하는 피맛길이 생겨나고 그 골목골목마다 인정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런 서울의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저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건축학도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사진작가도 아니고 전문 화가도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 평범하고 소소한 관심과 흥미를 갖는 보통의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서울 역사 기행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 서울나들이를 하게 된다면 상상속의 서울을 그려보면서 서울의 시간을 그린 이 스케치여행노트를 들고 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