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햇살은 좋았고, 바람은 적당히 불어댔고 오후의 한적한 시간은 내가 잠시 눈을 감고 저 푸르른 하늘과 살랑대는 바람과 언덕배기의 성당 한쪽구석 그늘진 곳에 앉아 책을 읽으며 프로방스에서 휴식을 보내고 있다 라는 상상여행을 떠나기 딱 알맞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완벽한 그 기분에 젖어있어 눈을 떴을때의 현실이 조금은 슬퍼졌을 정도다.

평화로운 시골마을로의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게 참을 수 없는 여행에의 로망을 갖게 하지만 이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은 여행에 대한 로망을 넘어서 쉼과 삶이라는 욕망에 대한 거의 완벽한 사색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읽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고향땅의 곳곳을 함께 거닐어보는 산책같은 여행을 같이 했다. 그래서 이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더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짙은 유채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면 또 내 마음은 프로방스의 라벤다향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고향은 제주시, 지금은 큰 도로가 놓여버렸지만 비가 오면 넘쳐나는 하천이 옆으로 흐르고 있었고, 그 옛날 배고픈 다리가 놓여 있어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가 있었다. 그러한 추억뿐만 아니라 어릴적 내가 살던 골목길 안쪽의 커다란 집 마당에는 내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부모님들이 겪으셔야 했던 4.3사건과 우리의 고난한 역사를 새겨보게 하는 동백나무가 있어 새빨간 통꽃이 툭 떨어지곤 하던 그 느낌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조금 언덕길을 오르고 조금만 더 골목길을 들어서면 그런 옛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안에 담겨있을 역사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성은 나와 너와 우리들의 인간답고 의미 있는 삶과 그런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위한 이성이어야 할 것 아닌가? 나의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회학'은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글쓰기로서, 인간다운 삶과 인간의 얼굴을 한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글쓰기가 될 것이다. 그런 사회학은 보통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대화를 유도하며 성찰을 증진하는 사회학이다. 개인의 성찰성을 증진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의 성찰성을 키우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냉철한 이성과 따스한 감성이 함께 작용하는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회학'을 발전시키는 일이 프로방스에 와서 생각하는 나의 지적 과제이다." (120-121)

괜히 이런 글을 옮겨놓고 있으려니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이 너무 딱딱해지고 있다. 이 책은 한 사회학자가 프로방스에서의 쉼의 나날들을 보내며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일상의 일기로 적어내려간 글이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의 의미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특히 고흐와의 만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난다. 실상 프로방스에 가보면 그닥 화려하지 않은 프랑스의 시골마을의 향취만 느끼게 될지라도 그곳에서의 휴식은 아름답지 않을까.

"프로방스에 가면 인생이 아름답게 생각된다. 왜일까? 프로방스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까닭은 무엇보다도 햇빛 때문이다. 여름의 메마른 대지와 건조한 대기 속에 그야말로 부서져 터지는 햇살 속에서 인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햇빛은 프로방스의 그 맑고 건조한 대기 속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글자 그대로 부스러뜨리고 터뜨려서 흩뿌려놓는다. 그런 햇빛에는 우울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대도시의 혼잡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직도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