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라이시 가즈후미'라는 작가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지만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글로서 이야기하는 작가.

그의 글 안에는 심도 있는 사색의 색채가 짙게 깔려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다가 여러 생각 속으로 길을 잃듯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 탓에 '내 안의 망가지지 않은'은 아껴 읽고 싶어 손에 잡지 않고 바라만 보던 책이었다.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그건 아마도 나에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나 자격이 없듯, 나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나 자격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칫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런 힘은 인간에게 없다. 탄생 자체가 자신의 의지나 힘과는 무연한 것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에는 분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 의지나 힘도 죽음 앞에서는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무력한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을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을 마음대로 끝낼 권리 따위가 있을 이 없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도 있을 리 없다. 인간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p.234)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을 상흔처럼 가슴에 갖고 있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런 '나'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얼핏 보기에 타인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무 것도 내어주지 않는 그런 남자다.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싶다면 자신을 버리고 완전하게 상대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해준 분의 말대로 행동하는 듯 하지만 속마음은 언제나 도망치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곁에 어느 면으로나 넘치는 연인인 에리코가 끈질기게 남아있었던 건 '나'의 말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머리 좋은 '나'의 입으로 내뱉은 삶과 사랑에 대한 담론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다분히 도덕적이어서 책장을 넘기는 나까지 '나'의 실상과 헷갈렸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힘이 들고 집중을 해야 하는 독서가 되고 말았다. 조금만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글 속의 '나'가 나를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행동은 나름대로 정당하다. 나는 멋진 남자다.

뭐, 이런 식으로.

 

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것은 딱히 회사 일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에 요만큼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것일까. (p.308)

 

한 남자의 1년간의 연애와 삶에 대한 이야기였으나 줄거리를 떠나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 자체에 요만큼도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어째서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것일까.

 

일상을 견디는 하루하루들 속에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라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행복하다.'를 이성으로 되뇌며 우울의 우물에 빠지는 나를 설득하던 내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소설 자체를 떠나 가슴에 던지는 근원적인 물음덩어리였다.

정말, 왜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걸까. 지루하고 따분한 이 삶을 어째서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계속 하게 될 질문 같았다.

그리고 내 과거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죽음과도 같았던 시간'을 떠올리며 질문에 마음으로 답을 내렸다. 매번 질문하고 매번 똑같이 내리는 답.

지금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이유는, 삶을 열정을 다해 사는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유는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라고. 달릴 길을 다 달렸다는 최후의 뿌듯함을 위해, 마지막 단 한 번의 웃음을 위해서다, 라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지루하고 따분하고 더욱이 슬프더라도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