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그것도 '내가 아이를 입양시킨 미혼모'라는 황당하다 못해 스릴러보다 더 흉악한 사실을 담고서.

마의 스물아홉 일지라도 엄연하게 처녀(?)인 나에게 말이다.

설상가상, 3년이나 사귀다 돌연 이별 통보를 선언했던 연인에게 찾아간 나는 그에게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

비참함에 치를 떨던 나는 그동안 챙겨 받지 못한 휴가를 얻어 로마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입양아의 양부모가 편지에 동봉한 비행기 티켓을 들고서.

 

사실 티켓은 양부모가 자신들이 입양한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자 아이의 친엄마를 초대하려 보낸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전후 사정과 상관없이 단순히 자신만의 로마 여행을 즐기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꽃청년을 마주한 순간 못 말리는 욕망(?)에 낚이고 만다.

여행사 직원이 아닌 꽃청년에게 '내가 보니(문제의 입양아)의 친엄마'라 강력하게 주장하던 나는

기쁨도 잠시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입양아와 마주하게 되고 그 순간 스스로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게다가 은근히 썸씽이 있길 바란 꽃청년이 아닌 느닷없는 청년의 친구 천우란 놈과 보니와의 로마 관광을 하게 된다.

오, 마이 갓!

 

 

이쯤 되자 '나'의 다소 엉뚱하다 못해 철없기까지 한 행각에 웃음이 입가에 절로 맺혔다.

그리고 '미녀는 괴로워'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던 상큼발랄함과 엉뚱함이 연이어 떠올랐다.

역시 동일한 작가가 쓴 거라 비슷한 느낌이 묻어나는 구나, 싶었다.

 

 

일주일.

늘 연애소설을 읽는 나로선 일주일은 꽤 긴 시간이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사랑에(비록 소설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마음을 뺏기며 책장을 넘기기엔 말이다.

의문의 편지로 미스터리하게 시작해 로마와 경주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발랄, 코믹한 선아 양의 연애가 책장을 넘기려는 손가락의 걸음을 더디게 했다.

 

29살, 지나간 연애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곳곳에서 눈에 띄는 훈남에게 눈초리가 휙휙 돌아가는 그녀, 선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때론 진지하게 바라보며 보듬어 안는 천우.

이들의 운명적 만남의 일등공신이자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시종일관 시크한 사랑스런 보니.

이들이 그리는 삼각선 저 밑에 숨겨진 또 다른 가슴 따듯한 비밀.

 

 

로맨틱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뭉클한 소설이었다.

순도 100%의 뜨끈한 연애소설을 원하는 독자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요즘 같이 점점 쌀쌀해지는 가을날, 따듯한 마음이 그리워진다면

차가워진 손끝을 녹이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코코아 한 잔을 닮은 이런 연애소설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