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사랑, 두 가지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원망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더 힘들다.(p.19) 


오래 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 아이가 말썽부리지 않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잘 따르면 착하다, 라고 말하며 칭찬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아이의 행동이 그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정돈되어 있으면 무척 좋아한다. 
어릴 적엔 나도 이 ‘착한 아이’란 칭찬이 거대한 덫(?)이 될 줄은 몰랐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 나이답지 않게 살아왔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무의식에 은밀히 주입된 생각,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 중 부정적인 느낌을 띠는 것들, 예를 들어 미움이나 질투, 화 등등 역시 
내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무의식중에 치부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치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감정이 내 안엔 없는 양, 또는 적절히 조절하는 양 연기를 해왔던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사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 분명 좋은 감정만큼 부정적인 감정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은 이런 우리 안의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인 증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내 안의 증오는 정당하다. 그러니 당당히 미워하자.
‘증오의 기술’의 저자 뤼뱅은 우리가 느끼는 증오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막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가슴에 품는 부정적인 감정, 여기서는 증오를 억압하느라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처벌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은 임상사례를 세 가지 유형으로 제시했다. 
첫 번째 유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사랑을 주었을 사람이 고통을 준 경우,
두 번째 유형은 가해자가 고의가 아니거나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경우,
세 번째 유형은 가해자의 책임이 아닌데도 뜻하지 않게 고통의 상황이 발생한 경우.

그는 책 속에서 주장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대신해 부당하게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미워할 수 있고 때로는 용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미워할 수 없다는 생각이 주는 오류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할 수 있다. 
어릴 적엔 타인에 대해 품는 감정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하나만은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특히 부모나 형제에 대한 감정은 더욱 그러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워하기도 했던 것이다. 
‘증오의 기술’은 이런 복잡한 감정을 지니는 심리상태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러니 당당하게 미워하라고 말한다. 

나 역시 이제는 이 말에 동감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