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도 되는 것만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공동생활

사람은 타인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덮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웃고 떠들고.... 정말 '적당'이란 말이 어울리는 등장인물의 상관관계는 현대인이 갖는 타인과의 관계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언젠가 나는 관계를 맺게 된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난, 너의 진심을 원해."
바보에 가까운 진지함이었을까?
굳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닐 지라도 진심으로 대하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내가 아마 욕심쟁이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네 이웃을 내 몸 같이..라는 식의 그리스도교적 교리를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자란 환경이다 보니 타인을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참다운 관계라 여겼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마다의 얼굴이 다르듯 관계의 얼굴도 다른 것 같다. 
전부는 아니래도 내 안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마음을 다해 사귀어야할 사이가 있는 가하면, 가벼운 농담으로 웃어넘기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귀어야할 사이도 있는 법이다. 

'퍼레이드' 속 인물들은 한 집에서 사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의 적절한 자신을 내보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깊은 속내는 모른다. 여러 날을 함께 지내왔다 할지라도. 그저 적당한 선까지만 짐작할 뿐이며 그 이상의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랬기에 그들의 생활은 언제든 모래알처럼 가볍게 헤어질 수 있고, 미련도 없는 공동생활이다. 
이런 면에서 이야기의 서술 방식도 인물 간의 쿨(?)한 관계처럼 네 명의 시점으로 각기 묘사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들의 관계와 닮은꼴이다. 

단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는데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유독 차갑다고 느낀 건 인물 간의 관계 때문인 것 같다. 특별히 눈에 띨 만한 잔인하거나 차가운 특성을 가진 단어를 행간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관계에 대한 동화적인(?) 기대심리 탓이겠지만 어쨌든 난, 몇 살을 먹더라도 말할 것이다. 
"난, 너의 진심을 원해."
더 많은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더 많은 사람과 친분을 맺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