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캠벨이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에 출중한 까닭에 그의 사상이나 철학의 깊이를 연모하면서도 막상 그에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왔던 터였다.
그런 내게 이 책이 다가왔고 이는 너무도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캠벨은 말년에 미국의 대안교육센터인 '에설런 연구소'에서 한 달여 간의 강의를 펼친 바 있는데,
이 책 <신화와 인생>은 바로 그 강의를 담은 강의록이다.
그리고 그때 캠벨의 강의를 들었던 다이앤 K. 오스본이라는 제자가 이 책을 엮었다.
오스본은 자신의 필기 내용을 중심으로 이 책을 구성했고,
거기에 캠벨이 영향을 받은 책이나 평소 인용하기 즐겨하던 책들, 캠벨 자신의 대표작들을 함께 버무렸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캠벨 사상의 맛깔스런 성찬과 향연이나 다를 바 없다.
캠벨 사상의 핵심만을 골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참 좋았던 것은 캠벨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듣는 '캠벨 자신'이었다.
즉 이 책은 캠벨 이론의 입문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캠벨의 각별한 에세이집 구실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특히 캠벨이 생각하는 결혼이라든지 사랑에 관한 문제에 눈길이 갔고 깊이 공감했으며,
노년에 관한 명상이 나오는 대목에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나의 노년기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철 모르던 어린 시절에 주머니칼을 훔치다 엄마한테 걸린 이야기라든지, 존 스타인벡과의 인연담이 나오는 대목에선 큭큭큭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공황기에 책상서랍에 1달러 지폐 한 장을 넣어두고 5년간 백수로 지낸 이야기에선
진심으로 그가 부러웠다. 백수였다는 사실이? 아니, 그는 그 5년의 세월 동안 읽고 싶은 책만 실컷 읽으며 지냈단다. 여러 일을 핑계로 책 읽을 짬을 많이 내지 못하고 있는 요즘의 내게 그것보다 부러운 일이 있으랴.

동아일보의 권재현 기자가 이 책에 대해 말한 것을 잠시 옮겨본다. 

"비교종교학과 신화학의 대가 조지프 캠벨이 생애 말년에 들려주는 아포리즘의 향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의 말년 강의를 제자가 정리했고 그의 관련 저술 중 관련 대목을 인용했다. 대공황기 자신만의 희열을 찾아 5년간 백수로 지낸 이야기와 제자였던 아내와의 연애담 등 진솔한 체험이 곁들여진 이 책은 웬만한 자기게발서 100권 이상의 '울림'을 지닌다."

웬만한 자기계발서 100권 이상의 울림.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뻔하디 뻔한 자기계발서들 볼 시간에 사람들이 부디 이 책이나 좀 봤으면 싶다는.
캠벨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여유로워지고 살기 좋아질 것 같다는 거짓말 같은 바람도 품어보면서... 

책을 읽는다는 기쁨,
그 책으로 인해 나의 삶이 보다 풍성해졌음을 깨닫게 되는 기쁨,
그 축복 가득한 책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기쁨.

캠벨의 책들은 언제나 내게 그런 '기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이 책 <신화와 인생>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꼈다.
내가 아닌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믿는다.
나는 소중한 누군가와 꼭 나누고픈 귀한 책을 만난 것에 행복하고
그렇게 오늘 내가 일군 나의 행복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