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애써 만나려하지 않아도 무슨 인연이 있는지 만나게 되는 사람과 물건들이 있다.
처음엔 그져 아무런 감흥도 없지만 자주 접하다보면 왠지 마음이 끌리고 호기심이 생기는 그런 것들....
'미실'이 그런 책이었다.
뉴스를 검색하다가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다가 자꾸만 눈에 거슬리던 책.

원래 소설들 특히 무슨 당선작이나 베스트셀러들은 웬지 고리타분하거나 과대포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란 꼬리를 달고 다니는 '미실'은 그래서 내 눈에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눈에 보이다보니 '그래. 네가 어떤 녀석인지 한번 보자!'라는 오기가 생겨서 기어이 읽기 시작했다.

'미실'은 누구인가?

'미실'이란 이름만 들으면 청순하고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정작 그녀는
신라시대에 색(色)으로써 왕을 섬기는 대원신통이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의 주인공 '미실'과 신라시대인들은 엽기적인 성생활을 하던 사람들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로써 아버지와 아들, 손자 그리고 동생과 형제가 한 여자와 함께 공유한다는 내용은 엽기적이고 패륜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런 여인이 실제 했을까 라는 강한 의문이 생겼지만 '미실'이라는 여인에 대해 화랑세기는 “백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있고 세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는 기록으로 미실(549~606)의 용모를 극찬하며 실존인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화랑세기'

화랑세기는 현재까지도 진위여부가 논란의 대상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1300여년전 신라고위층 자제였던 김대문의 저작 가운데 하나라는 기록이 있는 ‘화랑세기’는 사다함,김유신,김춘추 등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에 대한 전기라고 한다. 역사속의 책이었던 ‘화랑세기’가 1989년에 재야사학자 이태길씨가 발견한 32쪽짜리 발췌본 전문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그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그 내용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 달랐기 때문인데 위작임을 주장하는 국내 고대사 연구자는 '찬란한 신라사를 헐뜯기 위해 누군가가 신라를 도교로 덧칠했다.'며 반론을 펴고 있다. 신라시대의 역사를 새로 써야할 정도라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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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월주와 지배계급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풍월주'(風月主)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삼국사절요'에는 "신라왕이 용모와 태도가 단정한 동남(童男)을 뽑아 풍월주라 하였다. 선사를 구하여 무리로 삼고 효도와 우애, 충성과 신의를 닦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화랑세기'는 바로 이 화랑들의 우두머리인 역대 풍월주 32명에 대한 전기로 저술됐다.

●화랑도 조직

'화랑세기'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은 화랑도의 조직과 활동의 대강, 즉 '낭정'(郎政)의 대자(大者)다. 이에 따르면 크게 화랑 낭두 낭도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 화랑도의 조직표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 화랑은 진골 및 대족거문(大族巨門)의 자제들로 구성되며 화랑의 우두머리가 풍월주, 그 밑에 부제, 부제 아래 좌삼부 우삼부 전삼부 등이 있었다. 화랑 집단 아래에는 낭두(郎頭) 집단이 있어 망두부터 대노두까지 9급으로 나뉜다. 서민 이상은 낭도가 될 수 있는데, 30세 이상이 되면 낭두의 제일 아래인 망두로 입망하는 경우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가운데 낭두집단과 연관된 '마복자'(摩腹子)의 존재다.

●마복자

낭두의 아내들은 임신한 뒤 상랑과 상선, 즉 윗계급 화랑과 동침했다. 이 과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가 '마복자'로, 자라면 대를 이어 낭두가 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초야권을 연상시키는 이 '야만적인' 습속은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는 주요한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낭두들은 마복자를 통해 상선이나 상랑을 후원자로 얻고, 상선이나 상랑은 마복자인 낭두들을 지지자로 만들었다는 설명.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 진골 정통과 대원신통

'화랑세기'에는 풍월주의 출생 성격 모습 혼인 등에 관한 기록인 '화랑의 세보(世譜)'에 무려 40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화랑도와 관련된 많은 사실뿐 아니라 당대 지배계층의 구성과 관계, 사회상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하나가 바로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 이는 왕 또는 왕족에게 처첩 또는 색공을 바치는 여자를 공급하는 집단의 계통을 의미한다.

● 신분제와 친족제도

13세 용춘공조에는 진평왕의 장녀 천명공주가 왕위를 선덕에게 양보하고 출궁한 것으로 나온다. 그녀는 성골이었지만, 궁밖으로 나가 살게 되면서 진골 신분을 가지게 됐다. 즉 '화랑세기' 시대의 왕궁은 성골집단의 거주 구역이고 골품제는 신분 상승과 하락의 여지가 있는 체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화랑세기'에 나오는 풍월주의 지위계승을 보면 철저하게 부계의 혈족 원리가 지켜졌고, 적서(嫡庶)의 구별도 분명했다. 이는 왕위계승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평왕은 적자가 없어 장녀인 천명을 혼인시켜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결과는 공주 선덕을 왕으로 삼았다. 성골 신분의 왕위계승 원리가 지켜진 것이다.

● 포석사와 신궁

12세 '보리공'조에는 보리공과 만룡의 혼인이 결정되자 만호태후가 친히 신궁에 가서 공주례를 고하고 포(석)사에서 길례를 행한 것으로 나온다. 포석사에는 왕 같은 중요한 사람들의 화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견훤이 수도로 쳐들어왔을 때 경애왕이 비빈 종척들과 함께 포석정에 가서 잔치를 베풀고 놀았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은 기록의 잘못이며, 적이 침입한 상황에서 경애왕이 포석사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신라에 공녀로 온 것은 왜(倭)의 왕녀?

8세 풍월주 '문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그녀가 야국(野國)왕의 딸 문화공주였으나 공녀로 신라에 와 비조부란 인물의 첩이 됐다는 설이 나온다. 여기서 야국이 왜(倭)라면 당시 신라 가야 야국의 국제관계를 밝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출처 : 동아일보매거진.187호.

‘미실’은 사다함을 포함한 4명의 풍월주와 신라왕 3명과 태자 등을 색으로 그들의 사랑을 얻고 권력을 행사했던 대원신통이었다는 것이다. 소설 ‘미실’은 풍부한 작가의 상상력이 역사속의 인물 인‘미실’을 만나서 이루어낸 작품이다. 그 상상력이 지극히 풍부해서 사실을 독자가 ‘대한민국’이 아닌 ‘신라시대’의 백성처럼 생각되어 질 정도이다.

소설의 내용은 말 그대로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色(sex)'으로 섬겼다는 점에서 다소 외설적이고 낯뜨거운 장면을 연상하는 독자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 있다. ’미실‘이라는 여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런 장면의 묘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런 느낌은 거의 주지 않는다. 담담하게 흐르는 물을 가로막는 돌출된 돌멩이들이 있지만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이다.
그래서 ‘색’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자체, ‘미실’이라는 여인의 일생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어간다. ‘미실’을 통해서 본 신라시대 여인들의 성생활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풍기문란, 그 자체였다. 그런이나 남성 모두 수용했다는 점이다. 남편이 아내를 정부와 혼인하게 한다거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다시 아내를 맞아들이고, 이모인 왕후가 조카인 미실을 남편이 왕을 모시도록 하고 아들의 성교육을 의뢰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엔 책에 동화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21세기에 살고 있는 여인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미실’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설계하고 살았기에 ‘미실’ 그녀가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녀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녀의 그런 행동을 용납하고 수용했던 시대에 그녀가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자로 태어나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