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거 드세요." 동아리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기척이 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후배가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귀여운 후배가 커피 한 잔을 내미니 어찌나 반갑던지. 다음에 만나면 커피 한 잔에 과자까지 더해서 사주리라 다짐하며 한 모금을 들이켰다. 달콤씁쓸한 커피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커피 또는 차를 마시는 행위는 함께 밥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밥을 먹을 때는 말수도 줄고 계산을 나눠서 할까, 큰 맘 먹고 내가 다 낼까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커피나 차를 마실 때는 대화의 빈도도 높고 내가 전부 값을 치르기에도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도 음료 한 잔을 비우는 시간 동안 서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는 상대에게 웃음 짓기는 커녕 먹느라 바쁜 얼굴을 보이기도 민망하지 않은가.

 

 

 

  
 "토마호크 미사일 1기에 레이시언 유도 시스템을 더한 비용은 대략 8만4천 달러쯤 된다. 그 돈이 있다면 수만 명의 학생들에게 30년 동안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할 학교를 스무 곳 이상 세울 수 있다. 어느 쪽이 미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인가?"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이다. 그리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다.” - 책 소개 中
 
  
 

<세 잔의 차>의 저자 그레그 모텐슨은 십 여 년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K2를 오르다가 실패했다. 지친 몸으로 파키스탄의 한 시골 마을에 다다른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산을 만났다. 그 산의 이름은 바로 '학교를 세워라'.

 

파키스탄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만큼 후미진 그 마을에는 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마을 아이들은 당연히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고, 마을 어른들은 부디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파키스탄 정부도 해내지 못한 일을, 국적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나는 가진 돈도 없고 학교를 지어본 적도 없는데'... 모텐슨은 단번에 벅찬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세 잔의 차'를 마시며 그는 결심했다. 마을 사람들이 낯선 그를 정성으로 돌보며 가족으로 받아준 이상 그들의 아픔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 후 십 여 년 간 모텐슨이 어떻게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에까지 수많은 학교를 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고, 현지인들과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자세히 기록한 에세이다.

 

책에는 9.11 테러 당시 '적국'인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짓는 그에게 몇몇 미국인이 비난 편지를 보내 좌절감을 느끼는 대목이 있다. 모텐슨이 처음부터 대의를 품고 있었다거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학교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는, 그런 작은 뜻으로 학교를 지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르자 모텐슨의 학교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아이들은 전보다 큰 꿈을 품게 되었고, 어른들은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어떤 명분이나 대의를 품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군사작전을 수행하지만 결과는 미미한 정부의 활동에 비해 엄청나게 효율적인 '안보정책'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물품이나 돈을 쥐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어떤 악한이나 가난도 뺏을 수 없는 지식을 나눠주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한국도 19세기 말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들과 5,60년대 평화봉사단으로부터 교육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 적지 않다. (나 또한 간접적으로 그들의 혜택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한 분들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세 잔의 차>를 읽으며 21세기 한국이 세계 각지로부터 받은 혜택들을 다른 나라들에 베풀고 있는지 돌아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진짜 글로벌리제이션, 세계 모든 나라와 친구가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