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통치를 원했던 여군주

이 책에서 묘사된 그녀는 정말 정열적이고 불같은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다.
반역과 음모, 암살과 온갖 종교, 외교적 간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스코틀랜드 왕가의 상속녀로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는 태생적으로 불운한 삶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허약해서 요절할 운명인 프랑스 왕세자 프랑수아 2세와 정략결혼을 하는 그 행복한 순간에,
또 다른 불운(훗날 일찍 과부가 되는 것)이 추가된다.

그녀가 어린 시절 너무 많은 행운을 겪은 것은
역으로 보면 인생의 후반이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그리고 프랑스 왕비. 더 이상 행복해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프랑수아 2세가 즉위한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초라한 성으로 돌아온다.

수백년 전부터 이웃나라 영국으로부터 잦은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이 황폐했고, 개신교를 지지하던 귀족들은
이미 스코틀랜드 왕보다는 영국 왕에게 더 충성을 바치던 때.

국가는 가난하며 그녀의 편이라고는 거의 없었던 배경은
삼국지의 초반부, 조조가 십상시들을 토벌한 후의 장면에서 나오는 구절

황제가 황제도 아니고
왕이 왕 노릇을 못 하네
천 수레 만 기병이
북망산으로 달려가네.

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메리 스튜어트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 강력한 왕권 그 자체에 의한 통치를 원했다. 이미 시대 상황은 변해가고 있었음에도 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에서는 왕권이 강하려면 충성을 다하는 군사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군주는 솔직해서도 안되며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법.

그 점에서 볼 때 메리 스튜어트는 성공한 군주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프랑스 궁정에서 누렸던 호화스럽고 찬란한 시절을 보냈던 탓인지
부국강병을 꿈꾸며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갔던 엘리자베스 여왕과는 다른 면을 보인다.

그녀는 여왕으로서의 삶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더 충실했으며
솔직함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
군주론에서 말하는 군주의 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듯 싶다.

동시대의 두 여왕-영원한 맞수, 라이벌

이 책은 분량이 무려 530쪽이나 된다.
하지만 정열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순식간에 독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바로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관계다.
두 여왕은 항상 라이벌 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메리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보다 왕가 서열이 위였기 때문에, 항상 정통성 논란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고
그 논란은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있던 브리타니아 지역에서는 언제든지 반란이 일어날 여지를 제공하는 뇌관이었던 셈이다.

어찌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신하였던 보스웰과의 로맨스에 빠지게 된 메리 스튜어트가 왕족 출신의 남편을 폭사시켰다가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견제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잉글랜드에 도착 후 성에 감금된 채 20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엘리자베스에 대한 암살 음모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된 메리 스튜어트.

이런 역사적 사실로만 본다면 메리 스튜어트가 패자이고 엘리자베스가 승자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다는 점 만으로 판단한다면 어떨까?
권력, 돈, 명예-이것들만으로 인생이 어땠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메리 스튜어트는 비록 짧긴 했지만 인생에서 정열적이고 불 같은 순간이 분명 있었고
그것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은 그녀를 그런 모습으로 기억한다.

자, 그녀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결정하여도 늦지 않다.

뱀발
책의 머릿말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본다.

-내면적인 삶의 과정이 단 한 번의 폭발적인 순간으로 압축되어 버렸기에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묘사는 처음부터 형식과 리듬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모습을 좇아 묘사하는 사람은 그토록 가파르게 피어올랐다가 급격히 자신 안으로 후퇴해 들어간 생의 굴곡을 그 놀라운 모습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그녀의 처음 23년의 삶과 나중의 거의 20년에 걸친 감옥생활을 다 합친 기록이 정열적인 비극의 2년보다 짧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모순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운명의 공간에서는 외적인 시간과 내적인 시간이 겉보기에만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체험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 영혼의 한도를 결정짓는 법이다. 그 밖에는 영혼은 내면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을 차가운 달력처럼 세어나갈 뿐이다. 감정에 도취되어 행복하게 긴장이 풀린 채 운명을 수태하고, 영혼은 지극이 짧은 찰나에 무한한 충일을 체험한다. 그 순간의 정열에서 벗어나면 다시 공허의 긴 세월을 흘러가는 그림자, 귀먹은 허무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인간의 삶의 역사는 극도로 긴장된 결정적인 순간만을 헤아린다. 바로 그 순간만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서 바라보아야만 올바른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힘을 작동시키는 순간에만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참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내면에서 영혼이 불타오르는 순간에만 그는 외면적으로도 형상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