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소설집으로 잘 알려진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
수녀가 된 동생과 비정규직 열차 승무원이 된 언니.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아서 그녀는 세상으로 외침을 시작했고, 동생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오랜 고통에 결국은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고, 동생은 어느 날 새벽 둘째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미역국을 끓여서 멘토 수녀님과 언니에게로 향했다.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투쟁은 분노였고, 슬픔이였고 용기였다.
세상응 향해 올바른 분노를 펼쳐본 적이 있었던가?

사고로 사지 마비가 된 그 남자와 그녀의 이야기가 읽는내내 위태롭고, 안타까웠고, 먹먹했다.
하루아침에 사지 마비가 되서 모든 것을 그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그 남자의 꾹꾹 누른 슬픔과
그런 남자와 어떻게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낙지집에서 하루에도 수십마리의 손님들의 낙지를 잘라주는 그녀.
정말 누구 한 명이라도 그녀를 건드렸다가는 모든 것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시간들이 조마조마했다.
결국 그 남자가 그토록 묶고 싶었던 매듭은 그녀의 몫이였을까?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살아내야 하는 삶이 애처로웠다.

승혜와 미오는 동성애자이다.
승혜는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가정에서 아이의 저녁을 챙겨주려 한다.
아이의 엄마가 사다놓은 반찬으로 꺼내놓기만 하면 되지만, 비오는 날 따뜻하게 아이에게 무언가을 먹여주고 싶어서
밀푀유나베를 준비한다.
워킹맘이면서 싱글맘인 아이의 엄마와 그 아이를 보면서 승혜 자신도 어쩌면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본다.
어렸을적부터 가족이라는 것이 힘겨웠기에, 또 아이를 너무 좋아했기에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는 미오와 부딪히게 되고, 부모님들의 반대도 있고, 어려움들이 산넘어 산이다.
현실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였다.

외딴섬에 흘러들어가 카페를 시작한 다비드.
어느덧 섬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카페에 들리고, 그 곳에는 여러 사연들이 흘러넘친다.
커피향이 다르듯 사연마다 씁쓸하고, 시고, 달다.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남기고, 알리지 않고,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아들의 안위를 부탁하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마시는 커피는 직접 마시지 않아도 아주 쓴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카페의 노란불빛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살아가는 사람들.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카페 사장 다비드는 오늘도 늦게까지 카페의 모든 불을 켜 놓을 것이다.
그 헬리곱터가 떠나가는 밤처럼.

달콤한 초콜릿이 등장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죽기전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시키고, 육체는 화장한다.
그렇게하면 영혼은 영원히 살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거부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죽는것을 원하는 사람들만이 모여서 따로 사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요한은 죽기직전에 자신의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고,
베드로는 요한을 배웅해서 같이 도시로 떠난다.
내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시키면 나라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인가?
관련 소재로 해서 영화나 이야기를 본 기억도 나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참 아이러니한 부분인 것 같다.

두 남자가 별장에 있다.
제목이 "병맛"이라 뭐지? 싶었는데 그들의 대화나 상황자체가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요리하는 모습을 SNS에 올리고, 그 사진을 보고 별장에 놀러올 여자들을 물색하는 그들.
둘이 이런 저런 여자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만남에 대해, 관계에 대해 병맛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닭도리탕을 만들어서 먹고, 파스타를 만들어서 먹고, 그 상황이 참 어이없게도 피식 웃음이 났다.

크리스마스, 연말에 케익으로 동생과 기분을 내고 싶은 그녀.
그 정도도 그녀에게는 사치였을까?
알바생인 그녀는 월세와 보증금 인상 요구로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했고, 새해를 맞이할 기쁨도 느끼지 못한채
저렴하게 구입한 케익하나를 들고 늦은 시간 집을 보러갔다.
오지 않는 주인과 쏟아져버린 케익에 얼마나 마음이 무너져내렸을까?
그 작은 행복도 마음 편히 누릴 수 없었던 그녀에게 달콤한 케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참 다양한 음식에, 다양한 삶이 녹아있었다.
모든 것을 위로해주는 따뜼한 미역국 한 그릇, 지리멸렬한 삶을 지탱해주는 낙지, 따뜻한 가족을 상상하게 만드는 밀푀유나베,
커피 한 잔의 위로, 달콤한 초콜릿의 선물, 닭도리탕과 파스타가 병맛이지만 전부였던 상황, 작은 행복의 선물 케익.
모두 우리의 이야기이고, 이웃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공감했고, 마음 아팠고, 응원했다.
7명의 작가가 차려놓은 현실감 가득한 소설 요리, 이런 맛들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