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 모자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언젠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주인공이 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도 그들 안에선 단 한 명의 주인공이니까. 그들 모두 나름의 전성기가 있을 거고, 그때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소중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에 그쳤던 것이 실제 책으로 출간되었다니 설？？다. 

새하얀 표지와 단 하나의 글자 ‘숨’ 이 적힌 책이 나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로의 궤도가 다름에도, 나는 삶의 곳곳에서 그의 향기를 느낀다. 이를테면 길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은단의 향으로. 흔해빠진 은단이 어째서 그의 향기로기억되는지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독특하지만 흔한 향기가 그와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특별했던 사람들처럼, 그 역시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싶어했으니까” -158page 은단과 담배 중-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얼굴을 생각했다. 그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필명처럼 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책속 그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모자가 전하는 이야기. 이 책의 이야기는 실화일까 아닐까? 

그것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있을법한,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가 아는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일것만 같은 책.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은 단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짧은 글들이 모여있다. 수록된 글들은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란 두루마기의 넓게 펼친 뒤 임의로 한 부분을 잘라내어 덤덤하게 수록한 기분이다. 

각각의 글의 시점은 타인의 관점이기도, 편지글이기도,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이 조금 더 고귀하였다면, 나는 당당하게 그녀를 추억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녀가 조금 덜 외로웠을까” - 130page 결국 그녀는 네버랜드로 떠났다 중- 

 

저자는 우리에게 그들에 대해 더 알게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듯 그들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작가가 보여주는 짧은 상황을 읽으며 아주 잠깐 그들을 엿본다. 

 

이 책을 보는 내내 ‘타인의 삶’ 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아주 잔잔하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관음 하는 느낌을 주는 이 책은 나와 같은 주인공이 되기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우리를 공감하게 한다. 

작가의 감성이 작은 컵에 꽉 차 흘러넘치는 듯한 책이다. 

깊게 흐르는 감정을 짧은 글에 담아내어 좋다. 개인적으론 너무 즐겁게 읽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PS.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 

깔끔한 하얀색의 바탕에 크지 않은 사이즈, 그리고 소제목의 은색 반짝이는 이 책 ‘숨’과 꼭 어울리며 멋스럽다. 디자인과 내용이 꼭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