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달

2012.08.21.

 

p.190

뭐니뭐니 해도 킬힐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그걸 신었던 다음날 제일 잘 알 수 있어요.

낡은 청바지 아래 발에 익숙한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그 순간 발바닥으로부터 가슴으로 전해져오는

자유로움과 활기와 가벼움과 해방감이란!

이 맛에 킬힐을 ‘안’ 시는구나!

 

어쨌든 킬힐은 아름다워요.

다른 높이의 공기를 숨쉬고 싶을 때, 키 큰 남자와 마주칠 수도 있는 날에, 스탠딩 공연을 보러 갈 때, 그리고 이튿날 돈 안 들이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순간 등등에 유용하구요.

킬힐이 좋은 이유, 또 뭐가 있을까……

 

p.114

그 사람

나를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만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을 권력을 갖게 된다. 나를 기쁘게 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있어서 나는 기쁘다.

 

p.193

작은 기쁨들

자유로워진다는 거. 자기 자신한테 뻔뻔해지는 일이야. 남에게 뻔뻔하면 안 되지만, 어제 이런 말을 들었다. 상처 줄까봐 망설이는 친구가 조언을 구하길래 들려주었더니 기뻐한다.

 

비 오시는 날, 모두들 시장으로 칼국수와 부침개 먹으러 나간다. 꾹 참고 안 따라간다. 낮에 일해야만 저녁에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있다. 어제 타로 점을 쳐주었던 105호실 작가와의 약속. 내 애정운이 그리 좋다는데 밥을 안 살 수 없다.

 

p.277

원한다는 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외국 속담을 소설에 써먹은 적 있다. 하지만 낙관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한 나는 가능해지면 그제서야 원하게 된다. 멀어졌을 때보다 돌아온 순간에, 막연했던 내 그리움 실감으로 변한다. 마중 나와주어 반갑다, 내 그리움들.

 

p.298

이 방법으로 힘들다는 게 행복합니다.

……

어차피 힘들 거, 글을 쓰느라 힘든 게 작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겠죠.

 

 

p.303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다수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

 

p.319

1년에 3시간, 아기처럼

1년에 세시간쯤 아기처럼 지낼 수 없을까 생각해본다. 먹여주고 씻겨주는, 누간가의 손길을 받는 것. 친구가 정신 차리라며 마사지숍을 권한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