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가 아직도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까? 지금 주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똑바로 서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폐가 나빠서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져도 숨을 헐떡거려야 한다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과학과 상식이라는 커다른 담에 막혀 그 가운데 갇혀 사는 건 아닐까? 자폐아는 시각적으로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에 맞춰 소통하려는 포셔와 존처럼 혹시 나 역시 내 아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선을 다한 치료와 필요한 경험을 주고 있지 못한 건 아닐까? 티토가 처음 CAN에 와서 'HELLO"라고 인사할 때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하나씩 틀을 깰 때마다 난 포셔를 수백번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느라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이윽고 도브가 발을 내디드는 순간, 우리 주호가 처음 엄마라고 말을 했을 때와 네발기기를 처음 했을 때, 아니 호흡기를 떼어내고 처음 스스로 호흡을 했을 때, 처음 젖병으로 우유를 먹었을 때, 처음으로 자기 손가락을 빨았을 때, 처음 '아파'라고 얘기했을 때가 차례로 떠올랐다. 수도없이 사랑한다고 말을 했지만,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고,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마치 평범한 아이에게 대하듯 지낸 시절동안 내 아이가 그 모든 걸 말도 못하고 듣고 지내오며 힘들어 했을 거라고, '엄마..괜찮아.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래서 너무 미안했고, 괴로웠고 힘들었던 포셔처럼.. 내 마음도 깨질듯이 아프고 또 아팠다. 누가 알 수 있을까..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면... 새로운 치료법은 알지 못하지만, 그걸 찾아낼 방법도, 도전할 여유도 없지만, 그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나눌 그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깨달았어요. 아빠가 더 이상 나의 대화를 믿지 않는다는 걸. 나는 깨달았어요. ......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요. ..... 엄마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요. 엄마는 나와 엄마 자신을 믿었어요. 굳게 결심한 엄마는 좀더 속도를 높여 꾸준히 나를 가르쳤어요. '길이 없으면 만들면 돼.' - 티토의 일기 중에서 - '헛된 희망은 없습니다. 오로지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 존&포셔의 편지 중에서 - 빨강 티토 무코파드야이 빨강은 슬프고 비참했어. 땅에 빨간색이 별로 없어서. 빨강은 마구 울었어. 하늘을 칠할 수가 없어서. 하늘은 이미 파란색이었거든. 아마 그게 제일 어울렸나봐. 바닷물도 역시나 하늘빛이 비치는 게 좋았나봐. 하늘에 떠도는 구름도, 하얗거나 얼룩덜룩한 회색이었고, 들판에 자란 풀잎도 아른아른 녹색이었지. '나도 끼고 싶어. 눈부신 빨강을 보여줄래!' 빨간색이 투덜투덜 마음으로 소리쳤어. 해님이 조용히 이글거리며, 하늘 꼭대기로 솟아올라, 금빛 숨결을 후끈거리며, 빨간색의 울음소릴 들었어. 그날부터 계속, 해가 뜨고 질 때마다, 하루가 열리고 하루가 끝난대, 빨간색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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